국가보안법(국보법) 폐지를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국보법 논쟁은 지난 5일(일) 노무현 대통령의 ‘위헌이든 아니든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인 이 법을 폐기하는게 좋을 것’이란 발언으로 한층 더 고무됐다. 이에 9일(목) 기자회견을 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국보법 투쟁 대상을 노무현 대통령으로 규정하고 ‘국보법 폐지를 막는데 내 모든 것을 걸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한편 당론을 굳힌 열린우리당은 폐지 후 안보 공백 문제에 관한 대안 구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로써 여야가 각자 갈림길로 들어섰다. 이제 국보법은 17대 국회의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정치권의 이 같은 행보를 탐탁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선 국가보안법의 존폐는 ‘당론채택’·‘결사저지’식으로 감정의 골을 팔 일이 아니라, 먼저 국민의 의견을 물었어야 할 민감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각 당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듯한 인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또 이러한 대치 상황이 지속되면 국회가 다른 시급한 사안 논의를 뒤로 미루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때문에 국보법 폐지가 ‘정치쇼’로 전락하는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국보법에 관한 논쟁이 지금처럼 구체적 대안없이 계속된다면 국민을 지치고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현재 여야의 최대 관심사는 국보법 이후의 ‘개정안’과 ‘형법 대처안’ 마련이다. 대책에 대한 국민의 갈증이 극에 달한 지금에서야 나온 말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당리당략으로 내놓는 대안들이 과연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인들은 ‘당장 시청앞에 빨갱이들이 인공기를 휘둘려도 무죄다’·‘박근혜 대표가 독재 박정희가 됐다’ 식의 ‘혓바닥’ 정치를 그만두고 냉정한 눈으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민의를 듣는다며 제각각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각당이 들고 나올 두개의 카드에 대해서도 서로가 신중히 살필 의무가 있다. 이것이 각당이 서로 반영하겠다는 국민의 의견이며 17대 국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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