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너 쿨해서 그런거 신경 안 쓰잖아?”
내 튼튼한 어깨를 보면서 내가 강심장에 부은 간까지 지닌 인간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내게 이런 말을 건네곤 한다.
사람들은 대개 털털하고 뒤 끝없는 사람을 가리켜 ‘쿨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의 근원지는 알려져 있지 않고 , 정확히 어떤 상황이 쿨한 것인지는 애매하기만 하다. 이 단어를 순 우리말로 바꾸기도 쉽지 않다. ‘구질구질하지 않은’ 정도면 적당할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요즘 세상에 ‘쿨하다’는 말은 꽤 괜찮은, 기분 좋은 평가라는 거다. 어느 핸드폰 광고에서 한 가수가 입을 쫙 벌리고 외치는 문구도 ‘so coooool’일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남들이 소위 ‘쿨하다’고 말하는 내 모습은 본래의 나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진자 나는 남에게 상처입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처 받는 소심증 환자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줬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의시하지 않는 ‘척’까지 한다. 이는 너무 많이 상처받는게 두려워 내가 친 나름의 방어벽이다. 쿨하지 못하게 말이다.
나를 간파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갑자기 내가 사기꾼으로 느껴지겠지만 변명을 하자면 이는 내 나름의 생존방식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위 삼각관계에 처한 적이 있었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였으면 좋았으련만 불행히도 여자 둘에 남자 하나였다. 어린 맘에 친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나는 난생처음 ‘쿨한 척’을 하게 됐다. “괜찮아. 난 원래 그런 거에 신경 안써. 금방 잊어버리거든”
그런데 나름대로 가슴 시린, 고통의 시간을 보낼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이상하게도 그 일을 정말 금방 잊어버리게 됐다. 이런 과정은 그 뒤에도 계속됐다.
‘난 쿨한 사람이다. 이런 일에 소심하게 집착하지 말자’고 내 자신에게 다짐을 받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한 최면이 효과를 발했나보다.
나를 숨기는 일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 다음은 더 쉬웠다. 솔직한 삶은 복잡하니까 마음은 다소 답답하지만 쉽게 사는 법을 택한 거다.
옛날 선비들은 외유‘내강’형 인간이 되라고 말씀하셨다는데 난 거꾸로 ‘외강’내유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만이 이 거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그 때마다 내가 아닌 나로 변해가는 느낌이 괴롭기도하고 피곤하긴 하다. 하지만 .‘쿨하다’란 소리를 자꾸 듣다보니 거짓 칭찬에 맛이 들려서일까? 이제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게 뭐?’라는 뻔뻔한 생각까지 든다.
언제쯤이면 “쿨한 것쯤이야”라며 솔직하게 이 껍질을 벗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가끔은 뜨뜻했던 나의 인간다운 온도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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