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조율사 이보정씨

17C 바흐의 피아노 음이 이상했다면 ‘바하 인벤션 NO.4’가 지금처럼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훌륭한 피아노 연주 뒤에는 그 연주를 가능하게 하는 뛰어난 피아노 조율사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피아노란 단어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던 시절부터 피아노를 조율해 온 장인이 있다. 54년 동안 좀 더 선명한 소리를 위해 피아노 줄을 만져 온 예술의 전당 전속조율사 이보정(서울시 서대문구·78세)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피아노 조율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 악기 장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생계를 위해 부산 국제시장에서 하모니카를 팔던 어느 날, 손님이 가져온 고장난 하모니카를 고치게 됐는데 갈아끼운 부품 때문에 하모니카의 음이 맞지 않았고 그때부터 음을 맞추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아코디언·오르겐을 고치면서 자연스레 피아노도 조율하게 됐다.
피아노 조율을 시작했던 당시, 우리나라에는 피아노가 흔하지 않았을 뿐더러 조율사가 한명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미세한 음의 차이를 조율할 때도 스스로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이론은 독학으로 익히고 실기는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연구해야 했던 것이다.
“시각이 없는 사람은 청각과 촉각이 예민하다”고 말하는 그는 40여명의 시각장애인에게 피아노 조율을 가르치기도 했다. 시각 장애인들이 피아노 줄을 제대로 찾지 못해 줄이 끊어질 때마다 안타까웠지만 “피아노 조율사로 성공한 시각 장애인들을 보면 나 스스로도 놀란다”고 뿌듯해 했다.
그는 ‘피아노 조율’로 선행을 보이고, 외국 피아노조율협회에 우리나라를 가입시키는 등 우리나라 피아노 조율 기술을 한차원 성숙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5년 전에는 이런 활동들이 인정돼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던 한양대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기도 했다.
“피아노를 조율할 때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요.” 이제는 여유를 부릴만한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지만 아직도 자신의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이다. 지금도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그는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정확하고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미 80세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105세까지 피아노 조율을 하겠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평생을 같이 해 온 피아노에 대한 정열이 아직도 식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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