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6년차’ 인터넷 바이어 김은철(35세)씨

“북한 학생들은 종이 자판으로 컴퓨터를 배웁니다.”
‘북한 학생들도 남한처럼 학교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냐’는 질문에, 탈북자들 사이에서 성공한 인터넷 바이어로 알려진 김은철(35세)씨는 이렇게 말문을 연다.

북한에서 신의주고등중학교 물리 교사로 5년간 근무했다는 그는 신의주 관서대학을 다닐 때 이미 컴퓨터를 배웠을 만큼 상당한 엘리트였다. 97년 탈북 후, 중국과 미얀마를 거쳐 99년 11월 한국에 귀순했고, 북한에서 컴퓨터를 배운 경험을 살려 2002년부터는 의료기기 전문 인터넷 쇼핑몰 바이메드(www.MedPlaza.co.kr) 전자상거래팀장을 맡고 있다.
15일(수) 신설동 역 근처의 한 까페에서 그를 만나, 북한 신의주 동포들의 인터넷 환경에 대해 들어봤다.

-­언제 처음으로 인터넷을 접하게 됐나.


북한에 있을 때는 인터넷이 있다는 것과 어떤 기능을 한다는 정도만 알았다. 처음 인터넷을 접한 것은 중국에 있을 때였는데 제약이 많았다.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게 된 것은 한국에 와서부터였다. 중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터라 낯설진 않았지만, 이용방법을 몰라 밤새워 공부했다. 남한의 인터넷 용어는 영어로 돼 있어 영어도 공부해야 했다. 남한에서 인터넷을 처음 접한 이후 꾸준히 공부한 덕에, 회사에서 인터넷 판매 실적을 두 배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당시 북한의 인터넷 환경은 어떠했나.

9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는 인터넷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았다. 그저 한 두개의 국가기관에서 직원들끼리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였다. 통신사·중앙일간지 국제부에서는 정보수집차원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소위 ‘인텔리’라는 대학생들도 인터넷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학교를 다니지 않는 대부분의 북한 주민은 인터넷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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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컴퓨터 교육은 어떻게 실시됐나.

지난 90년부터 북한에서는 한달에 한 번 전국의 학생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실시했다. 하지만 컴퓨터 수가 많지 않아 ‘고등중학교’는 한 학교에 1~2대, 내가 다니던 관서대학에도 8대 정도였다. 학생들이 컴퓨터를 직접 사용할 수 없어 학교에서는 종이에 자판을 그려 타자 치는 법과 베이직(BASIC)· 알고리즘 등 MS-DOS 작동법을 가르쳤다. 북한은 하드웨어 쪽이 발달돼 있지 않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집중적으로 교육한다. 대학입학 시험과목 중 ‘컴퓨터’도 있는데 주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명령어가 시험 문제로 출제된다.

-­북한은 외래어를 철저하게 문화어로 순화시킨다고 들었다. 컴퓨터나 인터넷은 무엇이라 부르나.

 
컴퓨터는 ‘콤푸터’라고 하지만 인터넷은 영문명 그대로 ‘인터넷’이라고 한다. 또 대표적인 부팅 프로그램 역시 우리말을 사용해 ‘창독’으로 지었다. 창독은 김일성 전 주석이 중학교 때 다니던 학교 이름이다.


-­인터넷이 삶에 어떤 영향을 줬나.

남한의 발달된 인터넷은 내게 여러 기회를 줬다. 지금의 직장도 얻을 수 있게 됐고, 2001년에는 탈북자 예술단체인 ‘백두한라회’사이트 운영을 맡아 같은 처지의 많은 탈북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넷은 이렇게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이 인터넷의 연결고리가 북한에까지 닿아 북한 동포를 온라인 상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통일도 앞당겨 질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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