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재창조되는 철학, 「철학과의 만남」을 읽고
삶에서 재창조되는 철학, 「철학과의 만남」을 읽고
  • 이대학보
  • 승인 200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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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문제들」우수과제물 홍병진(도예·2)

가장 멀리있는 듯 했던 그러나 가장 가까이 있는 학문.
「철학」이라하면 하얀 바지 저고리, 고무신, 긴 수염 두꺼운 안경, 단내가 날것만 같은 주름 많은 얼굴이 떠오른다. 이런 모습은 보통사람과는 조금 거리가 있으므로 나는 그저 그것은 어렵고 머리를 싸매고 몇날 며칠을 공부해야만 조금 알게 되는 학문일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철학이란 것은 이미 나의 삶에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것을 철학이라 이름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살아가면서 아주 사소한 일에도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철학은 인간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간섭하는 학문이며 옛부터 그 범위가 넓으므로 철학자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그러므로 철학의 특성상 이 책에서도 역시 여로분야의 철학, 즉 윤리학·사회철학·형이상학 등에 관해 개괄하고 있다. 다만 여타의 철학 개론책에서와 조금 다른 점은 한 개괄 후 실생활에서의 철학적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갑작스레 닥치는 고민이 허우적대지 않도록 길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 내게서 철학적 물음을 계속하려하는 이유가 되었다.

예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 중에 「도리」를 꼽았었다. 도리는 곧 도덕으로 표현되어질 수 있다. 법적 제제가 없더라도 필히 지켜야만 하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연에 대한 신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한다. 이것은 더욱이 경쟁해야하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요즘 같은 복잡한 산업사회에서는 더욱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우 중요한 직업을 얻기 위해서 경쟁을 하고 있다고 할 때, 마지막 경쟁자만이 남게 되고 상대방을 헐뜯는 거짓말을 할 기회가 왔다고 하자, 왜 거짓말을 퍼뜨려서는 안되는가? 물론 거짓말은 도덕적으로 나쁜 일이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의 출세와 행복이 달린 일인데 도덕따위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이런 경우에 도덕 따위에 신경을 쓰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경우에 도덕적으로 옳아 보이는 반면에 다른 어떤 행위는 스스로의 이기심에 들어맞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자연히 어떻게 행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자기 자신에게는 엄청난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얼ㅎ은 행동을 해야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리사욕을 희생해야 될 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인가?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문제와 씨름해 왔는데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여러 차례 부딪치게 된다는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플라톤의 대화편 「국갯의 핵심을 이룬다. 이 책 앞부분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다. 「모든 사람이 정의 보다 부정의가 개인에게 훨씬 더 이롭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 이 주장을 더욱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는 신화 리디아의 이야기를 끌어들인다.

그는 리디아 시절에 왕을 모시는 양치기였다고 한다. 그렇데 큰 홍수 후에 그가 양치던 땅에 구렁이 생겨 그 안으로 들어가보니 조그만 문이 달린 속이 빈 청동 말이 있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키보다 조금 큰 시체가 있었고 그 시체의 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었는데 다른 보는 이가 없어 자기가 끼고 나왔다. 후에 양치기들의 정기모임에 그 반지를 끼고 나갔는데 반지를 만지작거리다가 거미발을 안쪽으로 하니까 자신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즉시 일을 주선해서 왕을 알현하는 사자들 중에 끼었다. 거기서 왕비를 꾀서 왕비의 도움을 받아 왕을 공격하여 처형하고는 나라를 차지해 버렸다.

이제 그런 반지가 두개 있다고 해보자, 한개는 정의로운 사람이 , 나머지 한개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가진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단호한 인품으로 정의를 고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기회를 가져오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요술 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부도덕한 행동을 해서 이익을 얻을 수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다.

전래의 대답들 중에는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으로는 그것이 이득이 된다는 것 같지만 다른 이들을 속이며 느끼는 심리적 영향을 생각할 때 그것은 오히려 손해이며 그러한 경우 잘되는 것을 못봤다는 식의 대답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정직함이 득이 된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이에 대한 철학적 이론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플라톤의 「국갯에 나타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홉즈의 「리바이어단」에 나타난다. 이 주 시도는 서로 매우 다른 것이지만,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이 「인간성에 대한 이해 」에서 출발해야 된다고 본점에서는 인정한다.

먼저 플라톤의 결론은 모든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욕망에 따르는 생활을 하면 평온함을 느낄 수 없으며 다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며, 일관된 행동양식을 따를 수 없게 된다. 또한 그것은 자기 이익이 아니며 지적 기쁨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홉스는 인간성에 관한 기본가정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시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끔 되어 있어서 개개인은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며 이를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다른 사람을 해친다는 가정이 그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많은 재화가 있다고 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쓸모 있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경쟁을 하고 서로 무기를 맞대고 충돌하게 된다. 홉스는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이 상태를 자연 상태라고 부른다. 도덕적 행동에 대한 홉스의 옹호론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합리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충돌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도덕률을 지킬 것을 약속해야 되는데 이 도덕률이 그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규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철학자들의 견해가 있으나 이제 나의 견해를 정하자면 이러한다. 살아갈수록 더욱 강하고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법적 제재보다 도덕적 지탄이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제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 의식구조 자체가 늘 「신독」의 자세를 가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도덕적 지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으면 악의 경쟁은 덜해지리라 생각되어진다. 현 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모두에게 불가피한 것이라면 모든 이들이 학문적 이상에 치우치지 말고 자신만의 생활철학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한다.

도덕성이 언제나 이기심의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다 . 그렇지만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는 않는 경우에도 옳은 행동을 할 이유는 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가진바, 옳은 일은 하려는 요구와 이타적인 요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기심보다 이런 욕구들을 우대해야 될 이유는 없다.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나의 이기심이 부당하다는 느낌은 쓸데없는 죄의식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기심의 발동은 누구에게나 있고 당연스레 여겨진다. 문제는 이기심을 갖느냐 안갖느냐가 아니라 나의 이기심을 최대한 선하게 발현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사소한 충돌에서도 어긋나거나 실수하지 않을 나만의 삶의 철학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렇게 했을때 비로소 나의 이기심 앞에 「합리적」이라는 단어를 달 수가 있는 것이다.

(199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