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 김지은 기자
  • 승인 200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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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에 투쟁하던 신학, 삶의 근본에 다가서다

과거 민중과 함께했던 ‘생활의 신학’, 이젠 전통과 생명 문제도 논의해
다른 학문·세상 읽는 틀이 될 것



그늘졌던 70년대말~80년대초 민중의 정치적 구원을 외치며 전성기를 누렸던 민중신학. 그 연구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활력을 잃고 사회적 위상까지 변했다. 이는 예전에 민중 문제의 토론 장소로 쓰여 늘 교수와 학생들이 모여있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의 현재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이 건물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어 과거 민중신학의 ‘모태’였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구나 이 건물은 지난 5월 헐릴 위기를 겪다가 이제서야 등록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으려는 참이다.

민중신학자들은 오늘날 민중신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져가는 이유를 크게 민중과 민중신학의 분리에서 찾고 있다.

우선 민중신학은 더이상 민중의 투쟁을 증언했던 예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 과거에는 정치적 억압으로 언론이 민중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이 처한 현실의 고발자로서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반면 현재의 열린 사회에서는 TV·신문을 비롯한 언론매체가 민중의 생생한 영상을 담아내고 르포기사를 통해 사회 소수자의 모습을 알리고 있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 따라 예전의 투쟁 방식이 그 의의를 상실한 것이다.

또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등 점차 의식화·조직화되면서 민중신학자들의 직접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됐다. 이에 대해 성공회대 권진관 교수(신학 전공)는 “고난받는 민중과 손잡지 않은 민중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지적 유희일 뿐”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달라진 현실에 맞춰 민중신학을 연구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성공회대 박재순 겸임교수(신학 전공)는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정당이 국회에 진출할 정도로 오늘날의 정칟경제적 상황은 7·80년대와는 다르다”며 “이제는 민중신학이 생명성과 영성을 갖고, 정치적 문제를 윤리·의식문제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민중신학 연구자들은 전통문화·생명·평화 등 새로운 화두를 민중신학에 끌어들였다. 한국의 전통성에 관심을 갖고 이를 옹호해 세계의 획일화 추세를 극복하는 활로를 찾아내려는 것이다. 특히 종교적 다원주의 입장을 취해 민중신학에 동학·민중불교 등 한국적 뿌리를 접목하려고 한다. 권진관 교수는 “동학은 성서 밖에 있어 주목 받지 못했던 민중이 신학 중심에 놓인 첫번째 민중신학”이라고 말했다.

현재 민중신학 연구의 중심지로 성공회대와 한신대를 꼽을 수 있다. 과거 우리 학교에서도 고(故) 현영학 교수와 서광선 교수를 중심으로 민중신학이 연구됐었지만 지금은 이를 잇는 후속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민중신학자들은 고 현영학 교수를 민중문화 탈춤에서 해학과 초월의 정신을 발견했던 학자로 평가한다. 고 현영학 교수는 민중을 해방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보았다. 한국민중신학회 김창락 회장은 “진정한 억압과 해방을 알 정도로 자각있는 존재라는 것이 고 현영학 교수의 민중에 대한 생각이었다”고 평했다. 민중을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절망 않고 이를 웃어 넘기는 존재로 보았던 것이다.

또 민중신학은 모든 생명이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임을 중시하는 ‘생명 신학’을 수용해, 환경문제나 에코페미니즘 등의 생명담론에 주목한다. 여기에는 억압받고 파괴당하는 자연생태계나 인간생존권 문제가 포함된다. 이와 관련해 평화의 기치를 내세우며 전쟁과 파괴를 일삼는 제국의 문제를 비판한다. 이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이후 세계 질서가 신자유주의에 의해 미국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덧붙여 민중의 주체적인 몸과 정신으로 관심을 돌리자는 움직임도 있다. 박재순 교수는 “한 인간의 몸과 마음에는 고유의 전통문화가 숨쉬기 때문에 민중의 주체성 문제는 곧 문화적 주체성 문제”라고 말했다.

민중신학은 단지 신학의 갈래에서 나온 학문적 주제가 아니라 사회를 인식하는 방법론이라는 점에 서 중요하다. 김창락 회장은 “다른 학문에서도 민중신학적 접근방법을 대입하면 민중신학 연구를 이어 나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