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언론동조 여성계서 문제제기

‘귀가 시에는 가급적 학부모가 자녀를 데리러 올 것’·‘혼자 다니지 말고 여럿이 함께 움직일 것’

서울 서남부지역에 여성대상 살인사건이 잇따르자 이 지역 여자 고등학교에서 발송한 가정 통신문 내용이다. 이를 본 학부모는 자녀들에게 일찍 귀가하라고 일렀다. 이로써 여고생들은 밤길을 마음놓고 거닐 자유를 통제받게 됐다. 여성대상 범죄의 발생이 여성의 기본적 권리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범죄 발생 못지않게 문제시 되는 점은 언론·수사기관이 사건을 왜곡해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방식이 그 예다. 언론은 서남부지역 살인사건을 ‘2004년판 살인의 추억’으로 규정했다. 신문과 방송은 피해여성의 인상착의를 추리해 ‘흰 옷 입은 아담한 체구 여성이 비오는 목요일 밤에 사고를 당한다’는 추측성 기사를 내놨다. 하지만 8건의 피습사건 중 3건은 목요일에 일어난 것이 아니며 비가 오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인제대학교 김창룡 교수(언론정치학 전공)는 “기자가 슈퍼맨인냥 범죄를 분석하는 것은 속히 근절돼야 할 관행”이라고 말했다.

‘유영철 살인사건’의 범행 동기를 ‘이혼을 당한 범인이 여성에 대한 증오심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분석한 기사도 있었다.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환경의 영향’을 언급하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그로 하여금 살인하게 만든 것처럼 서술한다. 여성계는 이 기사가 살인범의 범행 동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성대상 범죄를 보여주는 언론의 또 다른 문제는 보도의 선정성이다. 언론은 게이트 키핑의 책임이 있음에도 ‘몸을 함부러 굴리는 여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유영철의 말을 여과없이 내보냈다. 이에 대해 여성 민우회 늘바람 원사는 “범죄의 본질은 흐리고 여자의 자유만 제약하려고 한다”며 비판했다. 여성의 부주의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사건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여성 피해자를 존중하지 않고 사건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수사당국과 사법기관도 마찬가지다. 수사관은 조사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늦은 밤 뭐하려고 돌아다녔냐’·‘기분이 어땠냐’는 질문으로 2차적인 폭력을 가한다. 성범죄는 대부분 증인이 없기 때문에 피해 사실의 증명이 어려운 것도 문제다. 이런 이유로 가해자가 피해여성을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하는 일도 있다.

사회 곳곳에 여성을 통제하고 지조를 지킬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사회는 범죄 근절을 위한 대안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 권김현영 원사는 “언론이나 수사당국의 태도는 여성은 약한 존재이기에 처벌할 수 있다고 여기는 범죄인의 심리와 다를바 없다”고 꼬집었다. 또 “최근 여성관련 범죄가 증가하는 이유도 사회 혼란 속에서 여성을 타겟으로 한 남성들의 폭력성이 폭발한 형태”라고 덧붙였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여성계가 뭉치고 있다. ‘여성들이 밤길을 되찾자’는 취지로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여성단체와 대학의 여학생회가 달빛시위공동연대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달빛시위’란 이름으로 8월13일(금) 오후8시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소복을 입고 행진하며 희생당한 여성을 추모하는 동시에, 가해자들에게 역으로 위협을 가한다는 의미의 퍼포먼스도 펼쳤다. 달빛시위연대 이윤수련 사무국장은 “여성 스스로 정부를 비판하고 가해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행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전국단위로 이 운동을 확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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