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대학본부 옆 언덕에는 ‘만해 시비’가, 연세대 문과대 앞에는 ‘동주공원’과 ‘윤동주 시비’가 자리잡고 있다. 동국대 이선주(국문·4)씨는 “만해 시비 벤치에서 자주 책을 보는데 시비를 볼 때마다 뿌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이처럼 캠퍼스에 있는 문화 기념물들은 학생들의 가슴에 문화적 감흥을 전달하는 동시에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심어주고 있다.

각 대학에서 문화인을 기리는 기념물을 세우고 추모·기념전 등을 여는 것은 그 학교 문화행사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한신대는 통일·민주화 운동가이자 작가인 문익환(1916∼1994) 목사의 기일에 추모예배·영상물 관람·추모시 낭독·묘소참배 등의 행사를 진행한다. 성균관대는 학교 홈페이지에서도 퇴계 이황·율곡 이이·신채호 같은 동문을 소개하며 그들의 업적을 알리는데 적극적이다. 또한 ‘성균인의 날’에는 추모행사를 축제로 승화시켜 ‘606인 선배와의 만남’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 사진·유품전을 갖기도 한다. 연세대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유명한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추모예배·고등학생 백일장을 열 뿐 아니라 3월 셋째주를 ‘윤동주 주간’으로 정하기까지 했다. 윤동주 시인이 타계한지 60여년이 지났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모교 문학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은 문화·예술인들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데 소극적이다. 고작해야 행사 주최 측에 교내 장소를 빌려주거나 일부 교수·학생들이 참여하는 정도다. 우리 학교에서는 고정희·김정희·나혜석 등 우리 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여성시인과 관련된 학술대회·추모행사가 자주 열렸다. 이처럼 우리 학교는 외부의 문화인 추모행사 대관 요청에는 호의적이다. 그러나 학교 자체적으로 직접 기획·진행하는 행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미술·음악 등 다른 분야의 예술인에 비해 문인의 추모행사는 그나마 자주 열리는 편이지만, 이 역시 과거 사회·정치행적에 대한 논란으로 진행에 어려움이 많다. 이에 대해 우리 학교 김현자 교수(국어국문학 전공)는 “우리 학교도 노천명·모윤숙 등 좋은 문화인들을 배출했지만 친일행적·정치활동이 문제시 돼 추모행사를 여는 데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한다. 시 '사슴’으로 유명한 모더니스트 시인 노천명(1912∼1957)은 일제 강점기 여성시단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모윤숙(1909~1990) 역시 ‘시몬!/이렇게 밤이 깊었는데…’로 시작되는 산문시 ‘렌의 애갗로 유명한 50년대 베스트셀러 시인이다. 하지만 두 시인 모두 유명한 시를 많이 썼지만 제대로 된 문학적 평가를 받지 못했고 추모나 기념행사도 전무하다.

학생들도 친일·반역행위를 한 문화인에 대해 거부감을 갖긴 마찬가지여서 그 어려움은 더한다. 동국대는 2001년 중앙도서관 신축개관을 기념해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의 유품전을 열고 중앙도서관 내에 ‘미당문고’를 개설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현수막·대자보를 통해 유품전에 반대의사를 밝히고 전시장 앞에서 반대 시위를 했다. 이처럼 실제 많은 문화인들이 일제강점기·군사독재시대 반민족적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나 문화적 업적까지 매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모윤숙 문학재조명 세미나’를 연 한국여성문학인회는 “잘못된 행적으로 작품들까지 가려졌던 여성문인들도 이제 재평가해 볼 시점이 됐다”고 전했다.

대학은 문화인들이 실력을 갈고 닦으며 창작에 대한 열정을 키우던 예술·문화활동의 본거지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교가 주최하는 문화인 추모·기념 행사는 학생들이 우리나라 문화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여성문학인회는 “문화를 연구하고 창조하는 대학교가 주체가 돼, 작고한 문화인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의 작품들을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