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못 부르는 노래, 크게 불러서 죄송합니다.” 지난 2일(목) 노원구의 한 백화점 앞, ‘박쏭’씨의 노래 ‘언덕위의 집’으로 피스몹(peacemob) ‘파병반대 널린노래방’이 시작됐다.

‘피스몹’은 국제평화운동단체 ‘이라크평화네트워크’가 인터넷을 통한 집단 번개모임 플래시몹(flashmob)에 평화(peace)의 개념을 더해 만든 ‘평화를 외치는 깜짝쇼’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매주 목요일을 ‘몹요일’로 정해 광화문·임진각·영등포 등에서 피스몹을 열고 있다. 관중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널린노래방, 박스를 뒤집어쓰고 서있거나 평화의 공을 튀기는 퍼포먼스 등으로 파병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특히 ‘널린노래방’은 지난 7월22일 정오∼25일 오후10시 82시간동안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서 펼쳐져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몇몇 사람들이 파병반대 널린노래방(cafe.daum.net/endlesssong)을 따로 만들어 지금은 대학생·고등학생·직장인·지역단체회원 등 100여명이 넘는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이번 널린노래방은 ‘평화는 금메달’· ‘노래는 무쇠를 녹인다’ 등의 구호가 적힌 박스로 만든 무대에서 진행했다. 반주도 없이 노래책을 들고 ‘못 다 핀 꽃’· ‘뒷산 늙은 호랑이’등을 부르고 내려오는 ‘박쏭’씨. 악보를 외워 부를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이게 ‘노래방’의 특성이자 폐해죠” 라며 웃는다. 파병반대 널린노래방과 여러 지역단체 회원들이 박쏭씨의 바톤을 넘겨 받았다. “기타를 산 김에 회사에서 퇴근하고 이 곳에 왔다”는 ‘이대리’는 대중가요 ‘닐리리 맘보’를 ‘거지같은 이 나라 똥 대한민국’등의 가사로 개사해 재밌는 무대를 보여줬다. 예술공연단체 ‘예기플라타너스’·‘별음자리표’와 힙합그룹 ‘실버라이닝’의 공연도 이어졌다.

널린노래방은 ‘자유’ 그 자체다. 파병반대 널린노래방 운영자 한양대 ‘하늘아이’(물리·2)씨는 “파병반대에 참여할만한 것을 찾다가 사람들과 만나고 노래 부르는 것이 자유롭고 재밌을 것 같아 발을 들여놨다”고 전했다. 파병반대 널린노래방 회원들은 실명화된 일상에서도 자유롭다. 매주 목요일마다 만나 스스럼 없이 지내면서도 서로의 이름을 모른 채 ‘홍박사·이대리·박쏭·하늘아이’같은 카페에 등록한 아이디나 닉네임을 부른다.

널린노래방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트로트·민중가요·대중가요·자장가 등 장르를 막론하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른다. 또한 앉아서 생각에 잠기거나 바닥에 엎드려 누워있는 등 자신만의 뜻이 담긴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처럼 하나의 노래나 퍼포먼스만을 강요하지 않아 보는 사람들에게도 ‘자유’를 느끼게 한다. 핸드폰으로 사진 찍으며 공연을 지켜보던 이혜경(서울시 노원구·18세)씨는 “일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시위가 아닌 노래로 파병반대를 주장하니까 거부감도 없고 재밌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피스몹에 대해 서울사회과학연구소 김성욱 연구원은 “심각하고 경건했던 저항이 유희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를 ‘신종 저항 놀이문화’라고 정의한다. 컴퓨터 키보드 위에서 사회를 비판하던 네티즌들이 오프라인으로 빠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스몹에 대해 긍정적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플래시몹은 ‘미국의 문화를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시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등의 비판을 들어왔다. 플래시몹에서 태생한 피스몹도 이 비판의 목소리를 안고 갈 수 밖에 없다. 또 피스몹은 ‘플래시몹 이름을 빌려 정치적 성향을 띈 단체에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듣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평화네트워크는 ‘하나의 주장을 강요해 집단적으로 외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저항하는 것’이라며 피스몹의 민주적 정체성을 확신한다. 실제로 이라크평화네트워크는 ‘파병반대’란 공통 구호를 갖고 있지만,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사회당 당원에 아나키스트 클럽 회원까지 있을 정도로 한가지 정치적 색깔을 띄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풀가동이다. 전쟁이 끝나거나 노래 부를 사람이 없을 때까지.’ 파병반대 널린노래방 박스에 적힌 말이다. 이제 젊은 세대는 80년대까지 들었던 화염병과 피켓을 내려놓고 마이크와 노래책을 들었다. 그들이 만들어 낸 피스몹 역시 계속해서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다. 전 세계에 평화가 찾아오거나 모여서 놀고 싶은 사람이 없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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