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로 핸드폰을 구입한 후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 살 때는 분명히 이상이 생기면 바로 가져오라더니 막상 핸드폰에 이상이 생겨서 가져갔을 땐 A/S 센터에나 가보라며 딴청만 부렸다. 차근차근 말하면서 좋게 얘기할 때 들은 척도 안하던 점원은 결국 몇일에 걸쳐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나서야 마지못해 핸드폰을 교환해줬다.

 단순히 이상이 있는 물건을 교환하는 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언성을 높여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하면 꿈쩍도 안하지만 화를 내면서 극단적인 행동을 취해야 겨우 한 번 눈길을 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풍토다. 길을 가다가도 이런 광경은 종종 목격된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현장을 수습하는 것은 뒷전이고 삿대질과 욕설부터 퍼붓기 시작한다. 이런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느새 우기고 싸워서 이기는 것이 일을 빨리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 사회 안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총학생회와 학교측이 여러 번 회의를 통해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이 자리에서는 결코 대화를 통한 합의점을 모색하지 못했다. 총학생회의 등록금 투쟁 방법이 바람직한지 여부를 가리기 이전에 그들이 ‘회의가 이뤄지지 못해 삭발·단식 등의 방법을 취한 후에야 학교측이 겨우 사물함 확충 등의 타협점을 제안한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 모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총학이 사회에서 흔히 통용되는 ‘머릿수를 늘리고 목소리를 높이는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은 이 문제 역시 한쪽의 언성이 높아져야만 겨우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 사회의 풍토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생산적인 논의를 통해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은 성립되지 못하고 과정이야 어쨌건 말이 먹히게 하려면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혀야 한다는 현실만을 증명해줬다.

합리와 상식으로 합의를 이뤄내는 말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란 참 쉽지 않다. 결론을 내기까지는 논리는 제껴둔채 우기고 싸워야 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목소리가 큰 사람’이 승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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