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마감 때문에 자리에 앉아 있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수습 시험 1차 합격자 결과는 언제 알 수 있나요?” 마음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그 학생을 생각하니 문득 고3때의 내가 떠올랐다.

그 때 모 대학의 수시모집에 탈락해 모니터에 ‘죄송합니다.

불합격입니다’라는 문구가 떠 있던 것을, 그리고 그 순간 가슴이 얼어붙는 것 같았던 절망감을 기억한다.

누군가에게 세게 얻어맞은 듯한, 일종의 배신감까지 드는 기분. 슬퍼서가 아니라 분하고 어이없어서 흘렸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거절의 표시였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두려운 경험이었다.

건방진 얘기지만 사립 초등학교 추첨에서 고등학교 입시, 각종 대회에 이르기까지 나는 낙방해 본 적이 없었다.

오만할 대로 오만해져 있던 내가 정작 최고의 가치를 두고 지향하던 대상은 최초로 나를 거부했던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던 자신감과 자부심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한동안 ‘나는 하잘 것 없고 부족한 존재’라는 열등감에 짓눌렸고 모든 일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덧 나는 고학번 대열에 끼게 됐다.

과거 때문에 주저앉아 있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된 것이다.

이제 3년 전 대학 입시 때문에 흘렸던 눈물을 생각하면 빙긋 웃음이 나올 뿐이다.

그 곳에 ‘불합격’ 한 것은 곧 다른 곳에 ‘합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었을 뿐인데 뭘 그리 조바심 냈던 건지. 고등학교 때 읽은 수필 중 김소운의 ‘특급품’이란 작품이 있었다.

비자반으로 만든 바둑판 중 특급품으로 분류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 번 흠집이 났다가 원상복구 된 바둑판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무 흠집도 없는 나무보다는, 흠집을 자력으로 유착시킬 수 있을 만큼 탄력 있고 강한 나무가 더 높은 등급에 속하는 것이다.

세상 모르고 살아왔던 내게는 그 유연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

? 이제 겨우 스물 두 살. 앞으로 삶 속에서 내가 동경했던 것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거절’을 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대학 입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실패 따위는 두렵지 않다.

어차피 그런 경험 속에서 나는 발전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 이상에, 아니 그보다 훨씬 높은 곳에 도달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나는 너무 젊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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