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생리대의 솜을 표백하는 과정에서 유독물질인 다이옥신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오래전부터 생리대들이 ‘깨끗해요’라며 그들의 순결을 외쳐댄 것과는 판이했기 때문이다.

하얗고 미끈한 생리대를 바라보며 나는 그 문장이 당연히 ‘불순물 같은 건 없어요’란 얘기이겠거니 하고 편한대로 해석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눈 뜨고 감쪽같이 날치기를 당해버린 꼴인 것이다.

그동안 ‘깨끗하다’는 말에 속아 그야말로 독을 차고 다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된 그 말을 꼭 거짓말이라고 하기도 어려워 난 이 사기극을 맘껏 벌할 수도 없었다.

이처럼 슬쩍 뒤집으면 적당히 빠져나갈 수 있는 개구멍을 만들어놓는 화술은 곳곳에 난무하고 있다.

이런 화술을 구사하는 매체나 사람들은 무엇 하나 명확치 않은 말로 딱히 아무에게도 미움 사지 않으면서 이득은 있는 대로 챙겨나간다.

사람들에게 제공해야할 최소한의 정보인 육하원칙도 무시한 채. 이 같은 경우는 선거 기간에 뿌려지는 후보자의 홍보전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전단에는 후보자의 자격증 등의 리스트가 길게 늘어져있게 마련이다.

그중엔 더러 가짜도 섞여있지만 달리 확인할 길이 없는 유권자들은 홍보전단을 넘겨보며 ‘이 사람 경력 꽤 많네’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이는 표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미국 A대학교 B건물에서 연수’같은 말은 미국 A대학의 정식 연수를 받았다기보다는 혼자 A대학의 B건물에 한동안 놀러 다녔다는 얘기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선관위에 걸리면? “난 그 대학의 공식 인증을 받았다고 써넣지는 않았소” 이러면 끝이다.

그 뒤 내키는 대로 해석할 수 있는 말들의 도움으로 당선이라도 되면 조용히 혼자 기뻐하면 된다.

며칠 전 한 당선자도 해당 기관이 인정하는 정식 연수를 다녀온 ‘듯’ 써놓아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워낙 그 말이 애매하고 해석도 다양해서 사법처리가 곤란해졌다고 한다.

이제 무심코 흘려들었던 주위의 부실한 말들을 다시 들여다보자. 말장난 하나에 상상도 못할 속임수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누군가가 내뱉은 말에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