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오늘도 누군가에게 이 말을 던지며 짜증을 냈을 것이다.

“네 생각은 이해가 안 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첫 번째 상대는 어머니다.

세상에 나와서 제일 먼저 눈을 맞춘 분인데도, 열 달 동안이나 날 뱃속에 품고 계셨던 분인데도 말이다.

바쁜 아침에 왜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건지, 과제 때문에 밤을 샐 수 밖에 없다는데도 “자고 하라”는 답답한 소릴 왜 계속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연인 사이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왜 ‘답문’을 바로바로 보내지 않는 건지, 친구랑 영화 본다고 하면 정말이냐고 왜 꼭 확인하려 드는지, 하다못해 가끔은 그의 옷차림조차 이해 할수가 없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사람들에 대해 친구에게 (욕에 가까운)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친구 역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면모를 갖고 있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수업 시간에 만나는 교수나 선배, 소개팅 상대나 혹은 주선자, 정문 앞 가게 주인 등등 내가 부대끼는 모든 사람들은 많든 적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만나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가고 그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아진다.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세상 사람들은 너무 다양한 색깔을 가졌고 그 다양함 속엔 나와 같은 점 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면 차라리 간단할텐데 ‘다름’이기 때문에. 설득을 하고 또 해도 타협점이 보이지 않을 때, 어느 한 쪽이 생각을 접지 않는 한 대립도 끝나지 않는다.

여기서 ‘생각 접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로 이어지는데, 이게 머리로는 알아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얼마전 선배로부터 ‘생각 접기’ 방법 하나를 듣게 됐다.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와의 충돌로 짜증이 나 있던 나는 선배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한참 나의 투덜거림을 듣던 선배는 대뜸 “고3 때 수능 전날까지 이해 안 되는 수학 문제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내 귀에 들린 선배의 대답은 “외워야지 뭐!”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관계는 이해 안 되는 수학 문제랑 똑같단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는 외우는 수밖에 없단다.

우리말에 더 이상 따질 수 없게 만드는 말이 있는데, 그게 ‘원래’라는 단어란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하고 그냥 외워버리란다.

하하하! ‘원래’ 웃기는 선배라 한바탕 웃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보다 더 명쾌한 답은 없는 것 같았다.

인생을 쉽게 살 수 있는 비기 하나를 전수 받은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다시 내 주변의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으면 그냥 속으로 주문을 읊는다.

“그래, 외우자 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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