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화인들에게서 10월이란 엄청난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시기일 것이다.

특히나 엄격한 상대평가를 자랑하는 이화의 현실에서 중간고사가 끼어있는 10월은 눈 시린 가을을 만끽할 수 있기는커녕 며칠 밤을 새가며 촉각을 곤두세운 채 보내야 정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대학보 기자들에게 10월은, 그러니까 시험기간은 좀 다른 의미다.

매주 취재와 기사마감에 한참을 허덕이는 '사회 부적응자'들에게 꽤 긴 기간동안의 꿀 같은 휴간기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이대학보 기자들은 시험기간을 '모처럼 여행가는 기간' 혹은 '그간 못 만났던 친구들 만나서 회포 푸는 시간' 등으로 이해한다.

물론 '사회 부적응자'에서 '성실한 이화인'으로 돌변해 기예에 가까운 학점관리를 보여주는 기자도 종종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시험기간에 대한 보편적인 의미와 감각을 잃어버린 기자들로서는 시험기간에 그 종적을 감추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보사 편집실이나 신문, 기사, 사건 등은 잠시 미뤄둔 채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현재 학내 사안을 다루고 있는 대학취재부 부장인 나는 사실 잠적이 취미요, 미루기-회피하기-모른 척하기 3단 곡예가 특기인 무책임한 인간에 속한다.

결국 휴간기간 동안 학보사 기자로서의 정체성은 내팽개쳐버린 채 여행과 공연, 그리고 술자리에 골몰했다.

그 사이 이화에서는 도서관 개방운동을 진행중인 '올리버'의 분필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전학대회를 통해 중선관위가 총학이 빠진 채 꾸려졌다.

'이화아이즈'가 자보를 통해 송두율 교수를 비판했고 또 한 자보는 학내 어느 기독단체가 이단이라는 비판을 제기했으며 경영대는 단대제를 진행했다.

이대학보는 휴간 중이었지만 이화 사회는 정신 없이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제작에 들어가며 문제는 가시화됐다.

휴간 중 전학대회를 취재하지 않아 중선관위가 꾸려진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해 관련 기사를 쓰는 수습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원의 말로 전해듣는 전학대회와 기자가 취재한 전학대회는 다르다.

취재원이 더듬더듬 기억을 되살려 전해주는 전학대회 이야기로 기사를 작성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자로서 수치이며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아야할 이화인이 고스란히 손해를 보는 일이다.

특히 휴간 동안 진행됐던 올리버의 활동 보도는 이화인과 함께 나눌만한 가치가 충분했으나 단지 휴간 동안 진행됐다는 이유로 기사나 취재대상에서 누락됐다.

이는 분명 학내 사안보도를 책임지고 있는 부장으로서 직무유기였다고 생각한다.

기사화 되든 안되든, 가장 직접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확보해두고, 어떻게든 현장에 있어야 했다.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이화 사회의 사건들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현재 심각하게 반성하고 있다.

휴간 동안 놓아버린 사건들과 기자로서의 감각을 찾기 위해, 또 부서 성원이 찾게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생각이다.

그리고 특히 직접 취재요청까지 해주었던 올리버에 취재원에 대한 도리를 다하지 못해 죄송하단 말씀을 이 자리를 빌어 전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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