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2번 ‘교육철학’ 수업이 있는 날은 하루종일 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심심치 않다.

친구들은 혼란스러운 부분을 털어놓고 자기 안에 있는 고민을 때로는 울면서 숨김없이 뱉어낸다.

그 말을 듣는 친구들 역시 진지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나에게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함께 공부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선물했다.

이 수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이론을 내 삶과 접목시켜 배움으로써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전공에 깊숙이 들어가는 즐거움이다.

친구들과 교실을 나왔다.

이런 수업 분위기는 교실 안의 토론을 교실 밖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어느 오전 친구들과 학생문화관 휴게실에 앉아 수업 시간에 배운 이론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오고갔던 것이다.

대부분 교실 밖에서 이뤄지는 토론은 잡담으로 흐르기 일쑤나 여기서는 수업 시간 외에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나름의 깊이있는 논의가 계속됐다.

“아까 네가 흘려말한 거지만 다시 한번 듣고 싶어. 무슨 의미였어?” 우리는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 시간이 즐거웠다.

사실 이러한 느낌을 3년 동안 대학을 다니면서 그리 자주 맛보지는 못했다.

1학년 때 처음 접하는 전공 공부에 방황하는 나를 잡아주지 않는 선배와 교수를 탓했다.

또 다소 실무적인 경향이 있는 학과를 복수전공 하면서 학문을 한다는 느낌이 부족했기에 ‘대학에서 배우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에 무척 힘들었다.

전공 필수와 선택은 있되 전공 심화 과정이 없는 교육 제도는 학생들의 욕구에 2%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불편한 심정을 외부의 탓으로 돌려버려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위해 도망친 것 뿐이었다.

교육학도로서 난 대학에서 내 ‘전공 학문’에 심취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싶었다.

교실이라는 물리적 환경을 넘어서 내 전공에 대해 함께 논의하며 ‘학형(學兄)’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고 그 기쁨을 맛보고 싶었다.

그리고 난 휴게실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 내 바람이 그저 ‘꿈’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로 했다.

교수 없이 우리들 스스로 나눈 가볍지 않는 논의가 얼마나 소중했는가는 나뿐만 아니라 그곳에 함께 있던 ‘학형’들 역시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이 수업이 철학이니까, 수강 학생이 20명 남짓한 적은 인원이니까 가능했던 허무맹랑한 바람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른다.

난 그런 사람들이 날리는 편협한 화살쯤은 거뜬히 막아낼 방패를 갖추고, 학형들과 함께 어떤 환경에서든 남은 1년을 이곳에서 공부하고 싶다.

전공 심화과정이 없다, 강의실에 학생수가 많다, 가르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도망치지 않고 말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