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엔 단신 맡아야지”하지만 …
“이번 주엔 단신 맡아야지”하지만 …
  • 진선영
  • 승인 200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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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안내성기자’타이틀을 벗더니 이제는 ‘총학 전문 기자’가 되려는 건지 난 이번주도 또 탑이었다.

학보사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탑을 쓰는 게 엄청난 감투인 줄 안다.

학보사에 대한 오해 중 단연 넘버원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비롯해 일반인(!)들은 1면 기사는 학보사 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사람들이 쓰는 줄로 착각들을 하지만… 실상은 수습들이 가나다순으로 채워 나가고 있다;; 지난 주가 내 차례였다.

그리고 한동안 내가 탑기사를 쓰는 일은 없을 줄로만 알았다.

사실 토요일이 동아리 일일호프여서 난 단신을 맡아 화요일 중에 취재를 끝내고 금요일은 반드시 집에서 발뻗고 자겠다는 나름대로 야심찬 계획도 있었드랬다.

그런데 지난 주 총학에 대한 기사가 ‘핵’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진상을 밝혀내는 기사가 또 탑기사가 됐다.

그래도 난 다른 사람이 쓸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고, 이번 탑쓰는 애 죽었다.

난 단신맡아서 빨리 해치워버려야지’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이런 나의 바람들은 국장언니의 한 마디로 산산조각 나버렸다.

“이번에도 진선영 기자가 쓰나요?” 이어지는 대학취재부 부장언니의 대답 : “네, 진선영 기자가 씁니다” 빠라밤∼ ♪ 이게 왠일인가…‘말도 안돼, 이건 말도 안돼’머릿 속에서 나의 달콤한 환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금요일 밤 발뻗고 편히 자는 내 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져만 갔다.

결국 그날부터 나는 취재부 언니들과 한팀으로 형사놀이를 시작했다.

각 업체에 전화를 걸고 걸고 또 걸고 뭔가를 알아내기위해 굽신거려야만 했다.

결국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 때의 그 쾌감이란… 심마니가 산삼을 찾았을 때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우리가 알아낸 사실들이 대자보에 버젓이 붙어있었다.

지난 일주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그 때의 나는 마치 뭉크의 절규와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우리는 또 단서를 찾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 날 취재가 완전히 끝난 건 새벽 1시경. 모두들 어느 정도 마무리한 상태라 입력실도 이젠 한산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리드를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 고민을 해도 섹시한 리드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잠의 마왕은 자꾸만 나에게 손짓을 하고 그의 손짓에 내 머리가 뒷골부터 서서히 굳어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쇼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런데 꿈 속에서도 난 기사에 허덕였다.

엄청나게 큰 활자들이 나에게 슝슝 소리를 내면서 달려들었다.

‘어서 기사를 써∼ 어서 기사를 써∼’하는 무서운 소리도 들렸다.

결국 40분 만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학보사 기자란 이렇게 자면서도 기사에 시달리는 존재인가보다.

그런데 정말 정말 이상한 것은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나 자신이다.

지난 주 수습일기에서 나의 ‘매저기질’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걸 본 인터넷여론부장 언니 왈 “원래 학보사는 정상인 애들은 못 버텨. 지금 2년씩 남아있는 부장기들을 봐봐. 정상인척 하고 있지만 사실 다들 좀 이상해. 정상이면 2년을 여기서 버틸 수가 없다니까∼” 역시 그런 것이었다.

4시경 초고가 나오고 11시에 제목까지 나왔다.

‘이제 집에 가야지. 2시간은 잘 수 있겠다’생각하며 난 혼자 벙싯거리며 웃었다.

그 때 다가온 취재부언니가“선영아, 바쁘니? 안 바쁘면 일지 좀 정리하고 가라” 이번 마감은 그야말로 변수들의 총집합 같았다.

한번도 내 바람이 실현된 적이 없다.

결국 난 취재수첩을 들고 온 캠퍼스를 돌며 자보의 내용을 요약하고 다녔다.

그게 다 끝난 것은 오후 1시. 다들 기억하는가. 꼭 조폭영화를 보면 교도소를 출감할 때 배우들이 한 쪽 어깨에 비스듬히 가방을 매고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딱 그것이었다.

가정관에서 가방을 매고 나오는 나의 모습은. 한 번 애를 낳을 때 여자들은 꼭 각오를 다진단다.

다시는 애 안 낳는다고. 하지만 몇 년도 못가서 그녀들은 또 분만실에서 기를 쓰고 애를 낳는다.

애를 키우다보면 그 힘들었던 때가 잊혀진다나… 학보사도 꼭 그렇다.

안될 걸 알면서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이번 주는 ‘단신맡아서 화요일날 취재를 끝내고 빨리빨리 집에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