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교수를 원한다
변화하는 교수를 원한다
  • 황명화
  • 승인 2003.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대형 교양과목 수업시간, 교수는 인터넷 사이트에 강의자료가 있으니 다운받으라고 했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모든 강의자료가 작년 것 그대로였다.

어떻게 1년 전 강의자료를 그대로 쓰면서 학생들에게 자랑이라는 듯이 알려준 건지 어이가 없었다.

교수는 학생들의 ‘재수강’은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 자신의 ‘재강의’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 같다.

그렇게도 굳건했던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도 몇 년에 한 번씩은 바뀌는데 시대의 변화에 민감해야 할 대학이라는 공간이 이렇게 무딘 모습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비단 강의자료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10년 전 저서를 그대로 수업교재로 이용하는 교수, 필기하라며 수업 내내 자신의 오래된 강의노트를 받아쓰기 하게 하는 교수 등의 모습은 이미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렇게 정체된 교수들 덕분에 학생들은 가만히 있어도 ‘청출어람’ 해버릴 것 같다.

교수는 무엇보다도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더불어 학문을 연구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연구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교수가 되기 위해 젊은 시절을 학문에 쏟아부었던 그 열정은 어디에 가고, 수업에 대한 최소한의 준비도 없이 학생들을 마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가 이러한데 우리 사회도 다를 리 없다.

고위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알맞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자격을 철저하게 평가받는다.

이번에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임명을 두고 자격을 검증하는데 난항을 겪은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반면 새로 임명된 관리에 적용된 잣대가 현직관리의 재임기간 중에 적용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떠한 지위에 오르기까지의 노력만 필요하고, 그 자리에 서게 되면 더 이상의 진전은 없어도 된다는 것일까. 이른바 의사, 변리사, 회계사 등 전문직들도 마찬가지다.

그 자격을 얻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통해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하지만 합격하면 그들에게 더이상의 시험은 없다.

자신의 일에 있어서 고집이 있다는 것과 변화가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신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는 노력이 단지 훗날의 안일한 모습을 위한 것이었던가. ‘젊은 시절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오래된 격언이 나이 들어서는 노력하지 말자는 의미는 결코 아닐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