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의 색깔에 대해 끊임없이 논란이 일고 있다.

귀국 전에는 국정원의 체포영장 발부 여부가 문제시 됐으며 22일(화) 귀국 이후에는 송두율 교수가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또다시 불거져 나온 논의는 송두율 교수가 김철수일 경우에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대한 여부다.

그러나 정작 송두율 교수는 함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철수냐 아니냐, 처벌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현재의 논의는 사건의 핵심을 비껴가고 있다.

이념의 대립이 와해돼 가고 있는 이 시기에 친북 인사냐 아니냐, 친북인사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색깔 논쟁은 이미 시대착오적이다.

기존 것과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에 무조건 ‘빨간색’을 칠하고 모든 사상을 억압하던 시대는 갔다.

사상과 이념이 다원화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초점을 맞춰 알아봐야 하는 것은 송두율 교수의 색깔이 아니라 송두율 교수가 민주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의 여부이다.

실제로 우리는 왜 송두율 교수를 비롯한 해외민주인사들이 지난 20년동안 고국에 들어올 수 없었는지에 대한 어떠한 성찰도 담고 있지 않다.

92년 문민정부가 세워진 이래로 우리 나라는 스스로 민주 국가를 이뤘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상황은 민주화 정부와는 거리가 멀다.

현재 입국해 조사를 받고 있는 송두율 교수 외에도 많은 해외민주인사들의 입국이 난항에 부딪혔고, 이들 중 일부는 국가보안법이 없어지지 않는 한 스스로 입국을 거부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국내에 남은 민주인사들이 각 당의 국회의원으로 당당히 활동하고 있는 것과는 모순적이다.

이러한 일관성 없는 민주 국가의 실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았지만 그가 활동했던 한통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제는 낡은 이념논쟁은 버리고 민주주의의 본질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아직도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해외 민주 인사들을 하루 빨리 ‘경계인’의 지위에서 벗어나게 해야한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 우리 모두는 경계인이 아닌가. 이런 국가의 민주주의란 결국 한낱 허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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