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 불감증’ 사회
‘확인 불감증’ 사회
  • 신수정
  • 승인 200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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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사살이란 말을 들어봤는가?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두고 고지를 점령한 후, 시체 더미에서 혹시나 생존해 있을지 모르는 적군의 목숨을 완전히 끊는 사살을 말한다.

생존자의 최후 공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예방책이자 완벽한 승리를 위한 전쟁터에서의 비정한 전술이다.

요근래, 끔찍한 이 작업의 필요성을 절감한 사건이 있었다.

이번 학기 수강신청을 힘들게 마치고, 마지막으로 채플 요일을 변경하기 위해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채플 가능 횟수 2회. 부랴부랴 지금까지의 이수학점을 확인해보니 5학점이어야 할 내 훈련학점이 4학점으로 돼 있었다.

특별 보충까지 받아가며 분명히 이수한 채플. 전산상의 오류일거라고 위안하며, 이수하지 못한 학기를 보니 무려 1년도 훨씬 지난 2학년 1학기 채플이었다.

그 긴시간 동안 잃어버린 1학점을 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매 학기 날아오는 성적표에도 분명히 기재된, 내가 1년 전에 발견하고 확인했어야 하는 기본적인 것을 난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설사 교목실과 학적과에서 지나친 1학점을 인정해 준다 하더라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을 듯 하다.

이러한 확인 불감증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혹시나 발견될지 모르는 문제점을 끝까지 확인하자면 골치도 아프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의 유예기간은 문제거리가 없어 평온하다.

이 기간의 달콤함에 익숙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올해 엄청난 태풍 피해의 요인 중 하나는 몇 년 동안 그대로 방치된 낡은 제방때문이었다.

태풍은 우리 나라의 여름 단골 손님으로 몇 년 전에도 어김없이 찾아 왔었다.

그 당시 피해를 당한 후, 단단히 예방을 했어야 했다.

적어도 다음 해의 여름이 오기 전에는 위험했던 제방들을 한번쯤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완벽한 확인사살을 하지 못한 까닭에 태풍은 우리가 돌아서자마자 나타나 공격을 했고, 무방비 상태인 우리는 속절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사회면의 단골 뉴스인 의문사 사건도 마찬가지다.

의문사로 알려졌던 많은 죽음들은, 조금만 관심을 갖고 진실을 확인해보려는 노력만 있었다면 의문사가 아닌, 명백한 이유가 있는 죽음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의 확인 불감증에 대한 벌은 고작해야 다음 학기 두 개의 채플을 들어야 하는데에서 그친다.

하지만 많은 경우 끝까지 확인하는 작업을 소홀히 했을때, 위와 같이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부당하게 벌을 받게 한다.

길지 않은 유예기간의 포장된 평온함 대신, 야무진 확인작업으로 짧지 않은 잔여 기간의 완벽한 평온함을 추구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