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93년 선거 겨냥한「제2의 언론구도개편」
92·93년 선거 겨냥한「제2의 언론구도개편」
  • 이대학보
  • 승인 199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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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확보 경쟁 프로그래므이 퇴폐·저질화 초래
맞벌이 부부인 인씨는 요즘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밤이나 낮이나 TV에 달라붙어 통 떨어질 줄 모른다.

그뿐 아니라 부부가 없는 사이에 방송되는 낮방송은 낯 뜨거운 성인영화가 대부분이다.

오늘 영화의 내용은「변태 심리자의 연쇄 살인사건」. 아무도 TV프로그램을 통제할 수 없고 아들 교육을 위해 TV를 팔아야 할 형편이다.

이는 한국의 민영방송(이하 민방), 즉 상업적 사영방송 시대에 흔히 볼 수 있을 상상도이다.

지난 7월14일, 민자당은 민방의 도입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이후로 민방설립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특히 10월 31일 민방의 지배주주가「태영」으로 확정됨에 따라 언론계와 경제계에서는 지배주주 선정과 더불어 민방설립을 강행하는 정부에 대한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최병렬 공보처장관은「태영」의 선정에 대해『기업내용이 단순해 주력업종을 방송으로 전환하기 쉽고, 방송가인 여의도에 연건평 6천5백평 규모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궁색한 이유를 발표했다.

그러나 지배주주 선정을 둘러싼 사전내정설, T·K방송국 설립설, 권력개입설 등의 소문과 의심은 더해 갈 뿐이다.

공보처가 주주참여신청접수를 마감한 후 선정기준을 발표한 점, 태영의 주식이 선정 한달 전부터 56%까지 폭등한 점 등이 이 같은 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중앙회, 기독교재단 등은 아예 선정대상에서 제외시켰으며 주주신청 기업 선정에 있어서 국민적 합의는 배제한 채 20일이라는 단기간 동안 60건의 신청안을 밀실에서 처리해 버린 것도 그 근거라고 볼 수 있다.

「태영」의 경우 80년대 중반이후 관급공사로 급성장했고 군납사업 등을 통해 군부와 밀접한 유대를 가져왔다.

또한「태영」의 대표 윤세영씨와 최병렬장관, 김복동씨와의 밀접한 친분관계와 더불어 윤씨의 교우범위가 5, 6공 중심세력이라는 것도 권력개입설을 부채질하고 있는 주요인이다.

5공 당시 방송의 사영화로 인한 저질프로그램, 지나친 오락성의 폐해를 들어 정권은 언론통폐합을「초법적인 물리력」을 행사하여 감행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권의 필요에 따라「제2의 언론구도개편」을 단행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방송구조는 정권의 압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사회, 문화적 발전과 함께 바뀌어야 한다.

따라서 정권의 구미에 따라 국영, 관영, 공영체제를 거친 얼룩진 방송사를 또다시 민영체제로 전환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이러한 의혹과 비난 속에서도 민방설립을 강행하는 정부의 의도는 무엇인가? 첫째, 87·88년 이후 MBC, KBS에서「방송의 민주화, 공영화」를 지향하는 방송노조가 탄생하고 국민의식수준에 발맞춰 양대 방송사가 민주화의 길을 걷자 현체제로는 방송을 정권의 선전도구로 이용할 수 없는 것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정부는 민방설립을 통해 통제가 불가능한 기존의 양방송사의 세력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지난 2일, 5개의 지방MBC를 원소유주인 재벌들에게 반환하라는 판결과 함께 MBC의 민영화도 이미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MBC아나운서 손석희씨(노조교육문화부장)는『정권은 MBC 민영화, 새로운 민방(채널6), AFKN의 반환으로 본격적인 사영상업방송「시장」을 통해 언론본연의 사명을 사장시키려는 것입니다.

즉, 사회비판성 프로나 공익성을 담은 프로는 시청률의 저조로 자연소멸할 것이고, 따라서「방송민주화」를 외치는 노조는 발붙일 곳을 잃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둘째, 가장 근본적으로는 92·93년 대통령선거와 총선거, 지자체, 내각제를 겨냥한 정권재창출 준비라고 볼 수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대외협력국장 이세용씨는『이번 민방설립은 적어도 91년말에는 정권홍보용의 방송을 설립하겠다는 정권의 음모로서, 이 같은 졸속행정을 빚어낸 것입니다』라고 지적한다.

이밖에도 언론계에서는 현재 우리의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민방이 설립되었을 경우 발생될 여러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우리나라처럼 정경이 유착된 상황에서 재벌기업의 언론소유는 당연히「권언유착」으로 귀결되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더구나「태영」은 자사측도『엄청난 특혜』였다고 인정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은혜를 베풀어준」정권측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은 실종될 수 밖에 없고, 앞으로 지배층에 유리한 편파·왜곡보도를 할 것이 쉽게 예상된다.

태영의 윤회장이 발표한『중산층을 주시청대상으로 중도보수우익의 이념을 표방, 지지하겠다』는 지침도 정권의 민방설립 의도와 맞아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광고에 1백% 의존하게 될 민방기업은 시청률 확보를 위해 선정적이고 흥미위주인 프로를 방영할 수 밖에 없다.

실제 일본의 민방의 경우,『재미없는 것은 TV도 아니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퇴폐적이고 과감한 정사장면 등으로 시청자를 유혹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씨는『일본민방은 볼거리를 미끼로 시청자를 붙들어 놓아 정치적 무관심과 우민화, 냉소주의가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졌다』며『우리사회에도 이러한 폐해가 예상된다』라고 말한다.

「태영」은『대부분의 프로를 외부제작사에 의존할 방침』이라고 발표했으나 국내프로덕션의 영세성에 비추어 볼 때, 공급자체가 힘겹기 때문에 결국 수입된 오락일변도의 미국영화가 판칠 것은 명백하다.

국민정서함양이나 공공성보다는 시청률확보를 통한 이윤창출이 민간기업의 최대 목표이기 때문이다.

셋째,「노다지를 품은 금광」으로 비유되는 민방의 예상수익은 연 5백억원이다.

이 이윤은 시청료와 광고를 통해 직·간접으로 국민이 부담하게 되는 조세의 성격이므로 환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기업의 목표가「극대이윤」이니만큼 이윤의 사회적환원은 기대하기 어렵다.

분단의 모순과 계급간의 갈등을 수반한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사명은「국민적 대표성을 띠고 민족적 화합과 여론의 올바른 반영」이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의 공영방송이 정권의 압력에 의해 올바른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손씨는『양 방송사의「권력의 손에서 국민의 품으로」돌아가려는 노력에 역행하는 민방설립은 정권의 장기집권의 일환입니다.

이 시기에는 우리사회에 알맞은 공영방송의 토착화가 선행돼야 합니다』라고 밝히며『민주방송의 여건을 조성하며 시청자들을 조직화하고 질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라며 앞으로의 방송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