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에 노숙자를 데려오려고 찾아다녔던 게 가장 힘들었어요. 제가 술집 포주인줄 알고 피하고…개한테 물린 적도 있죠.” 가정폭력과 신체·정신적 장애로 노숙을 하게 된 여성들과 함께하는 여성 희망의 집 ‘화엄동산’의 김기혜 소장(영문·67년졸)의 경험담 한 자락이다.

“고교 시절 가장행렬 사진을 보니 예쁘게 꾸민 애들 틈에 넝마로 분장한 제가 있더군요. 그런걸 보면 이 생활이 제 팔자인가봐요.” 스스로 ‘팔자’라고 칭할 정도로 그의 관심은 항상 어려운 사람들에게 쏠려 있다.

심지어 대학 시절에도 그에게 아현동 달동네와 종로 넝마주이 천막촌을 누비게 했던 그 관심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저도 가난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난한 사람들에게 눈길이 갔어요. 돈으로 도와줄 수 없으니 직접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김기혜씨의 이런 열정은 98년 ‘화엄동산’의 운영이 어려워졌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그 곳의 소장을 맡은 후, 쌀 한 톨·배추 한 포기도 꼼꼼히 기록하는 ‘정직한 운영’을 담보로 후원을 얻기 위한 그의 노력이 시작됐던 것이다.

“후원 좀 해달라고 성당으로 절로 열심히 다녔더니 나중엔 저더러 ‘젬마 보살님’이래요.” 그런 김기혜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여성이 길거리로 내몰려야 하는 현실과 그 현실을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환경이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하고, 정신질환 등을 이유로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여성들에게 편안한 쉼터가 되기에 환경은 너무 열악하다.

월세를 내고 사는 작은 2층 가정집은 너무 좁아 여성들의 깊은 이야기를 들을 상담실조차 없다.

정신 수준과 건강 상태가 다른 입소자들이 함께 살고 있어 제대로 된 재활 프로그램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라리 이분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의식주만 해결한다고 사람다운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는 영화나 연극표 후원도 대환영이다.

한번은 신파극 ‘애수의 소야곡’을 보며 현실과 극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지체 입소자들이 너무 울어 3명이나 기절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말이다.

요즘 김기혜씨는 서강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 중이다.

평생을 관통한 그의 열정이 이제는 ‘이론과 실제를 접목’시키려는 포부로 발전한 것. 의료부문의 봉사활동과 빈민 연금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앞으로 그의 목표라고 한다.

불교 용어로 ‘하심(下心, 겸손함)’을 추구한다는 김기혜씨. 아직도 어디에선가 방황하고 있을 여성 노숙자를 위해 ‘낮은 곳에 마음을 쓰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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