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판 관련 단체들과 학술 및 대학교재 전문 출판사들이 일반화된 불법복사 풍토에 더 이상 학술도서를 출판할 수 없다며 불법복사 근절을 위한 정부의 획기적인 조치가 없는 한 출판사등록증까지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 × × 학기 초 “책 샀어?”라는 상투적 말을 건네는 대학생들이 당연스레 들고 있는 불법 복제물. 도대체 주제별 커리큘럼에 맞게 짜깁기돼 있는 복사물로 공부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얼핏 봐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대학가에 불법 복사물이 제작돼 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복사물은 춥고 배고픈 시절 한 권이라도 책을 더 사고 싶었던 고학생들의 가상한 지적동기로 제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난무하는 불법 복사물에 출판업계가 울상짓고 있다.

이런 불법 복사물 제작의 토대는 학생·교수의 ‘누이좋고 매부좋은 거래’에 있다.

학생들이 하나의 강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책 저책을 뒤져봐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입맛에 맞는 텍스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이런 수고를 덜고자 교수에게 짜깁기 교재를 건의하는 학생이나 다양한 텍스트에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 쉽게 가르치자고 하는 교수들의 모습에는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는 옛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결국 이런 교수·학생의 ‘은밀한 거래’ 덕분에 책을 만들어도 500부가 채 팔리지 않고 학술도서 전문 출판사의 85%가 반품됐다.

게다가 불법복제로 침해된 저작권과 꺾여버린 창작의욕은 5년 전에 비해 12% 감소한 발행종류와 86%나 줄어든 학술서적 발행 수로 입증됐다.

또 출판계를 고사위기에 처하게 한 불법 복제물 성행의 숨은 복병은 대학 도서관이다.

도서관에 비치된 초판 인쇄물인 소시적 전공 서적 한 권은 매번 대출 중이고 학생들은 수업에 필요한 교재가 없는 도서관을 뒤로할 수 밖에 없다.

‘학기 초 만만치 않은 가격의 전공서적을 몇 권씩 구입하기에는 학생들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느끼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전공서적 비치에 투자를 하고 있지 않다.

설사 도서관에 책이 비치됐다하더라도 편리함에 익숙한 학생들은 한 번 가기도 어려운 ‘도서관 행차’에 인색하다.

F. 베이컨은 ‘어떤 책들은 맛만 보고, 나머지 책들은 삼켜버리고, 몇몇 소수의 책은 잘 씹어서 소화시켜야한다’고 말했다.

과연 우리가 한 학기에 짜깁기 교재로 맛만 보는 수십 권의 책에 비해 소화하는 책은 몇 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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