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법이 이화인에게 제대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11월23일(금) 이화언론이 함께했던 34대 총학생회 선거 토론회 사회를 보면서 각 선본에게 했던 질문이다.

이에 한 선본은 ‘과학생회부터 시작하겠다’고 했고 다른 선본은 ‘학생들이 원하는 것에 관심을 갖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 대답과 토론을 듣고있자니 어딘가가 답답했다.

각 선본이 말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매년 총학 선거철마다, 아니 거의 일년 내내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총학 후보들은 이화인에게 다가가고 싶다며, 이를 해내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분명히 각 후보들은 이화인에게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이화인에게 설문지를 돌려 각 선본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받았다.

설문지에는 구체적인 공약에 대한 질문도 있었지만 각 선본이 제시한 공약들에 회의가 가득한, 질문이라기보다 항의성 글이 많았다.

이화인들은 설문지를 통해 지금까지 총학이 자신들에게 다가온 적이 없다고, 그리고 총학생회가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었다.

매년 다가가겠다고 외치며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공약으로 내는 총학과 언제 우리에게 다가왔었냐고 묻는 이화인. 서로 만나지 않는 평행선처럼 총학과 이화인이 얼마나 다른 곳을 보고 있는지, 그 괴리를 새삼 실감했다.

이화인이 학생회와 학생사회에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항상 총학의 움직임에는 20∼30명 정도의 학생들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이화인 ‘참여의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평소 그 가능성에 약간은 비관적이었던 나는 그 조금의 ‘가능성’을 아이러니하게도 토론회를 위해 이화인들이 작성해준 설문지에서 확인했다.

처음에 설문조사를 기획하면서 학생들이 선본에게 하는 질문을 많이 써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설문지는 여러가지 글씨로 씌여진 이화인들의 의견과 질문으로 가득했다.

피상적이고 추상적이더라도 이화인들은 각 선본에게, 그리고 총학생회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자 했고 비록 항의 성격의 질문이나 글이었을지라도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번 토론회에서도 이화인에게는 아직 ‘참여의 가능성’이 있다는 논의가 있었다.

후보들은 이화인에게는 과학생회나 자치활동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화인과 총학이 아직 눈을 맞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서로가 이야기하려 하고 있었고 나는 그 가능성을 믿고 싶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사장되지 않기를 바란다.

2002년, 이화의 달력이 또 한장 넘어가고 있다.

내년에는 그 ‘가능성’이 ‘가능’으로 바뀌고, ‘가능’이 ‘현실’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