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시작되고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신선한 함박웃음을 띄며 등교를 하는 그들의 표정에서 나는 문득 99년 입학 당시의 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여느 새내기처럼 나는 기대와 꿈을 한가득 품고 입학을 했다.

그 중에세도 나는 대학에 가면 선배들가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내게는 너무나 신선한 정치나 사회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정치나 사회, 문학. 어떤 주제로도 치여하게 한 주장을 펴며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과감하게 비판할 수 있는 그런 토론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2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지금, 나는 이런 기대를 많이 접었다.

2년의 대학생활에서 깨달은 것은 우리 대학 안에서 그러한 토론을 접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토론이라고 이뤄지는 것은 어떤 주제에 대해 조사해 온 몇 명의 이야기를 듣고 그 외의 몇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비판을 하는 것이었다.

준비가 적은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비판을 하려니 그 비판의 수위가 깊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이리라. 한편 교수님이 제시해 주기만을 바랄 뿐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더라도 팔을 걷어 붙이고 피밀하게 주제에 대한 준비를 해오는 사람이 드물다보니 종국에는 얼마나 많이 읽어왔느냐가 토론의 관건이 되는 게 다반사였다.

왜 지금 우리에게 토론의 문화는 없는가?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흔히 이야기되듯 교육문제와 토론문화가 부재한 우리 사회의 문화 때문이리라. 우리는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수업내용을 듣고 암기하는 기술만을 배웠을 뿐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자유로이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는 교육은 받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생극을 '틀린'생각으로 간주하는 문화에 익숙해져 왔다.

이러한 모습은 TV토론프로그램에서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고 "그렇지만···"이라며 자신과 다른 의견 내놓기를 시작하려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고 핏대부터 세우는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

현실은 인정하자. 그러나 토론의 문화가 관연 정착시킬 수 없는 문화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하자. 토론이라는 것이 마치 거대한 담론을 내놓고 시사적인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사장시키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다.

오늘은 새로 나온 소설책을 읽으면서 아니면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느낀 삶에 관한 문제를 친구와, 선후배와 함께 안주삼아 한 번 치열하게 이야기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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