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을 홈페이지, 키워드 '어머니와 딸'을 입력. 몇 년 전 관객의 가슴을 파고 들었던 '조이 럭 클럽', 최진실·김혜자 모녀이야기 '마요네즈'등 낯익은 영화제목들 사이로 정감가는 '고추말리기'라는 이름이 나온다.

독립영화란 수식어를 달고 선전용 간판까지 내건이는 누굴까? 할머니, 엄마,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사람, 얼마 전 개봉했던 '고추말리기'의 장희선 감독(사생·95년졸)을 만났다.

영화감독이 되려고 했는지 그녀는 어릴적부터 네모난 텔레비전 전파에 유별난 관심을 보였다.

"두살 때부터 텔레비전을 끄기만 하면 울어서 저 키워주신 할머니를 곤란하게 만든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대요" 비디오와 텔레비전은 그녀의 친구였고 비디오 가게 주인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단다.

남들이 고3이라고 밤새 공부할 때도 밤늦게 하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시리즈물 '불루문 특급'은 빼놓지 않고 꼭 봤다.

그러나 어릴 적 그녀의 관심사와 달리 대학에서는 엉뚱하게도 선생님의 길을 택했다.

"지도로 된 책을 보면 그저 좋았지···어떤 공간 속의 문화와 생활을 보는 게 재밌었어요" 그래서 전공을 지리로 선택했고 그녀도 졸업반이 돼 교생실습을 나갔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난 선생님은 아닌가봐'였고 다시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그린다.

"취직해서 살기 어려운 성격인데다 막연히 영화가 좋았어요. 그래서 잘할 수 있는 걸 좇아가기로 했지요" 대학시절 친목의 수단으로만 영화를 취급했던 연합영화동아리에 등을 돌리고 영화집단 '청년'에 들어가면서 비디오 형식의 영화 '리와인드'를 만들었다.

"'청년'을 통해 영화 스텝일을 비롯한 조연출을 맡으면서 실무를 익혔어요. 그러던 중 첫번째 필름영화 '웰컴'을 찍었고 꼭 만들어야 할 것 같아 한 번 엎기까지 했던 '고추말리기'를 찍기 시작했어요" '살 빼~ 이년아'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엄마 앞에서 '자기가 언제 밥이라도 차려주고 말을 하던지. 니보고 괴물이래'라고 중얼거리는 희선, '내눈엔 일천지야' 한숨쉬며 집안일을 하는 그녀의 할머니. 이들 여성 삼대의 일상을 담은 '고추말리기'는 필름으로 제작된 그녀의 두번째 작품이다.

'엄마가 밉다.

그런데 가끔씩 불쌍하다.

나는 할머니가 좋다.

그런데 가끔씩 짜증이 난다'라는 영화 대사와 "할머니와 어머니가 한이 남지 않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선택할 수 있는 자의적인 삶 말이에요"라는 말에서 왠지 모를 여성의 삶에 대한 애증이 보인다.

"잠실에서 '고추말리기'를 보시겠다고 혼자 광화문까지 오신 70대 할머님이 계셨어요. 이 정도면 제 영화 볼 사람은 다 봤겠죠?"라며 환한 미소를 띄우는 장희선씨. 텔레비전이 삶의 낙이던 '테순이'가 이제 자신만의 렌즈로 영화에 색을 입힌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사람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내가 소화한 이야기와 스타일, 그런 걸 찍자. 관객들이 보기에도 자연스런 그런 걸···"이라고 가만가만 이야기하는 그녀는 세상을 향해 렌즈를 돌린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