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됐으며 좋겠다.

사귀었으면 좋겠다.

결혼했으면 좋겠다.

애도 낳으면 좋겠다.

쌍둥이였으면 좋겠다.

세쌍둥이면 좋겠다.

쑴풍쑴풍 쑴풍……” 지난 3일(토) 전국에 있는 대학 신문사의 편집장들이 모였더 자리. 이들의 뒷풀이 자리 사회자를 맡게 된 나는 이런 노래를 들어며 서있어야 했다.

‘이대 현집장’과 같이 앉고 싶은 다른 남자 편집장에게 손을 들어보라고 한 뒤그 편집장을 옆자리에 앉힌 사실도 그렇거니와그 이후에 ‘가장 어울리는 커플(?)’이 되어 사회자가 된 것도 기막힌 일이었다.

그 이후에 이들은 두 사회자를 놓고 이런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쳤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한 학보사의 대표자가 아닌 ‘여자’로 이들에게 비춰지고 있었다.

성폭력 사례집에 실릴 만한 사건임에도 이런 일이 아직도 공공연하게 일어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아다.

나름대로 대학 사회내에서 ‘언론운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 사람들이 보여준 이 실망스런 행동은 그러나 적나라한 하나의 예일 뿐이다.

많은 학교에서 성폭력 방지학칙을 제정한다고 하고, 여성이 한 사람의 동등한 인격으로 존종받는 시대가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서는 ‘글쎄올시다’의 반응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소위 ‘의식’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모임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그린 만화 ‘스머프’에서도 여성은 정당한 노동이나 지식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여자 ’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유일한 여성 스머페트는 책을 쓰거나 농사를 짓는 자가 아닌, 긴 속눈썹의 여자이기데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페미니즘’은 외면당했다.

우리가 늘들어야하는 거대한 운동이론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작 여성의 인권 존중을 이야기했던 학문이 얼마 없었음을 생각한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신좌파’의여성들이 결국 그들만의조직을 만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런 자리에서 같이 즐거워하거나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하는 여성은 결국 그 조직 사회내에서도 ‘촌스럽다’는 눈총을 받기 마련이다.

거대 담론이나 하나의 목표로 모인 사람들 속에서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달라는 여성의 목소리는 조금 성가신 ‘짹짹임’으로 들리는 것이다.

어쩌면 ‘여자’가 아닌 ‘인격’으로 봐달라는 주문은 이화 안에 있는 우리에겐 지겨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조금 독특한 양념’으로 비춰지고 있지는 않는가? 사회, 그리고 조직이라는 거대한 음식 앞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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