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의 마지막 순간들을 음미하기 위해서 남편과 함께 매일 24시간 깨어있고 싶어요" 지난 8년간 백악관의 안주인을 기냈던 힐러리는 요즘 백악관을 떠날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 그 중심이라고 할수 있는 백악관에서 8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클린턴 부부로서는 감회가 짙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년간의 학보사 임기를 마치고 나도 이제 학보사 구성원으로서의 생활을 정리하려 한다.

밤샘 작업이 있던 지난 금요일, 집에서 가져온 비디오 카메라로 학보사의 하루를 촬영했다.

지독히도 평범해 보이는 일상도 작은 사각형 안에 놓고 바라보니 마치 깊은 의미를 지닌 듯 특별해 보였다.

밤새 돌아가는 MP3음악 속에서 멍하니 모니터를 응시하는 정기자들의 눈빛, 구석진 소파에 지쳐 쓰러져 잠든 수습들, 그리고 좀 더 나은 기사를 쓰기위해 서로를 설득하기에 여념이 없는 기자들, 모두들 한정된 시간에 주어진 임무를 마치기 위해 나름의 악을 쓰고 있었다.

낯익은 학보사의 구조도, 선생님들의 모습도 잊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 각인하듯 카메라를 들이댔다.

일에 치여 지낼때는 그렇게도 지겹고 긴장되던 곳이었건만 막상 카메라로 본 학보사의 영상은 풋풋한 사람 냄새나는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이대학보사에서 2년을 보낸 나의 감회는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감하는 클린턴부부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것이다.

인생의 황금기라는 대학 4년의 반을 그곳에서 보냈고, 싫든 좋든 평생 내 뒤에는 한때 "이대학보사의 기자"였다는 꼬리표가 붙어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무정함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서 사람들은 "시작"과"끝"이라는 정점을 만들어 놓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는것일까? 끝, 마지막, 최후··· 이런 단어들이 주는 느낌들은 사뭇 모하다.

"끝"이라는 단어는 끊어지듯 다시 연결된가는, 단절과 연속의 이중적 의미를 지닌듯 하다.

졸업식, 퇴임식, 연인과의 이별, 죽음 등이 애절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단절" 의 속성 때문이리라. 수년간 익숙해져버린 일과 인간관계의 끊어짐에서 느끼는 가슴 저릿한 아쉬움은 잠시 우리의 감정을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수업시간, 근무시간, 인생의 무료한 시간들이 "끝"이라는 이름으로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결국 우리는 쉼을 얻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긴 쉼 앞에는 언제나 그것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준비는 끝남 후의 긴 휴식을 기다리는 마음 때문인지 더욱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사주 팔자의 아홉수나 "유종의 미"라는 말이 생겼을까? 기말고사 준비에 북적한 도서관, 이화교를 드리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니 2000년을 마무리 짓는 이화의 잰걸음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 기간이 지나면 시험 후 다가오는 방학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졸업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화인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의 미학이 바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젖먹던 힘을 다해 모두 "에너자이져"가 돼 봄이 어떠할지.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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