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월 22일 조국의 민주화, 자주화, 평화통일의 실현을 이념적 내용으로 하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가 건설되었다.

1948년 와해된「전평」이래 최초의 자주적인 노동조합전국 조직이 결성된 것이다.

이는 87년 7, 8월 대파업투쟁이래 3년여에 걸친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전진을 거듭해온 남한의 노동자계급이 성취한 최대의 조직적 성과이며, 노동조합운동사에 중대한 일획을 긋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전노협의 건설은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완전한 해방으로 나아가는 긴 여정의 출발점에 불과할 뿐이다.

노동자계급은 이제 막 전국적인 노동조합조직을 건설함으로써 지역적 한계를 돌파해나가고 있는 정도에 머물러 있는 반면 정권과 자본가계급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이 땅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보수야당을 자신들의 파트너로 맞아들임으로써 87년 6월 항쟁 이후 일시적으로나마 이완된 지배세력내부의 균열을 치유하는 한편 88년 하반기 이래 공안정국의 조성 등을 통하여 민중운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노협이 전경과 사복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천신만고 끝에 출생신고를 한 바로 그 날, 물샐틈 없는 경비망 속에서 구국을 위한 결단이라는 미명하에 거행된 민자당 창당은 해방을 향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대단히 어려운 조건 속에서 수행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역사느 우리에게 항상 실현가능한 과제만을 제시하는 법이다.

지난 시기 활동에 대한 엄밀한 평가와 반성의 토대 속에서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과학적 설계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빛을 발할 것이다.

1. 투쟁의 흐름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전노협은 상반기 투쟁을 거치면서 많은 수의 노조가 와해 혹은 탈퇴하였으며 5월말까지 무려500여명의 노동자가 구속, 수배되었다.

이에 따라 전노협의 조직력은 상당부분이 훼손되었으며, 위원장을 포함하여 다수의 지도자가 일시적으로나마 정권에 의해 손발이 묶여있는 상태이다.

혹자는 이러한 이유를 들어 전노협을 중상모략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천만의 말씀이다.

90년 한 해 동안 전노협이 획득한 성과는 입은 손실에 비하면 비할바 없을 만큼 크다.

90년 노동자투쟁의 양상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전노협의 와해 내지 무력화를 목표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권과 독점자본의 대대적인 공격과 이에 대항한 전노협의 치열한 탄압저지 및 조직력 강화를 위한 투쟁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소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정권과 자본가계급에 의한 탄압공세와 이에 대한 전노협의 대응투쟁이라는 점을 중심에 놓고 보았을 때 대략 5개의 소 시기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첫번째는 89년 하반기부터 90년3월 임투전진대회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으로 남한 자본주의의 경기침체에 대한 이데올로기 조작을 바탕으로『노동자책임론』을 광범위하게 유포시킴으로써 조합원 대중의 투쟁열기를 위축시키려하는 한편, 국민대중으로부터의 고립을 획책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노협가입노조에 대한 불법부당한 업무조사, 112범죄신고에 의한 파업사업장 공권력 투입, 단병호 전노협 위원장, 현대 중공업노조 이영현 위원장의 구속 등 물리적 탄압 또한 극심하게 자행하였다.

이는 3월에 가면 본격화될 임투열기에 대한 사전제압의 성격이 강하게 내포된 것이었다.

두번째는 3월11일(혹은 18일)임투 전진대회로부터 4월23일 현대중공업 파업투쟁에 이르기까지 단위노조에서의 임금교섭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업무조사를 통한 노조에 대한 탄압과 자본가의 의도적인 교섭지연으로 한 때는 예년에 비해 3배 가까이 빠른 진척속도를 보였던 타결율은 오히려 역전되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지지부진하게 전개되었다.

세번째는 90년 투쟁의 최고절정을 이루었던 4월말에서 5월20일까지의 시기이다.

상반기내내 수세에 몰렸던 노동조합운동은 KBS노조의 파업과 연이은 현대중공업노조의 파업에 고무받아 48년 이래 최초로 전국적 규모의 총파업 투쟁을 통하여 87년 이래 성장한 노동자계급의 역량을 유감없이 과시하였으며, 여세를 몰아 그 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임금인상 투쟁도 대부분 승리로 이끌었다.

네번째는 7,8월에 걸쳐 임금인상교섭이 대체적으로 마무리되는 가운데 상반기 투쟁에 대한 평가와 함께 손상된 조직력을 복구하고 하반기 사업계획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마지막으로는 전국 각 지역에서 대기업 노조의 민주화 열풍이 부는 가운데(금속노련의 경우 신임 집행부의 80% 이상이 민주지향적 인물로 교체되었다.

- 8월 22일 중앙일보)하반기 노동악법 철폐투쟁과 노동운동 탄압저지투쟁이 본격적 전개를 예고하는 시기로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2. 무엇을 배울 것인가? 앞에서 잠깐 살펴본 바와 같이 전노협은 90년투쟁을 거치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투쟁과정에서 조직력의 상당한 침탈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노협의 의지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로는 정권과 자본가 계급이 3당합당 등을 통하여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확보하고 입체적인 탄압을 퍼부은 반면 지노협을 기반으로 이제 막 결집하기 시작한 전노협의 역량은 의식적인 면에 있어서나 조직력에 있어서 대단히 취약했다는 사실이다.

두번째로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선도적으로 대변해야할 전국 노동운동단체 협의회 등 변혁적 노동운동 조직들이 보인 정치적 무능력함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들은 국민연합 등에 대표자를 파견하는 이외에 탄압에 대한 공동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했다.

세번째로는 전노협 스스로가 범한 오류이다.

전노협은 다양한 실천과 투쟁을 통해 조합원 대중들의 주체적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있어서 많은 헛점을 보였으며, 정권과 자본가계급의 탄압에 대해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노정함으로써 전노협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대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노협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탄압에 맞선 과감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전체 노동자들에게 인상을 남겼으며 조합원대중들의 투쟁과 의식의 질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록 현대 중공업 및 KBS 노조의 파업에 대한 지원 연대투쟁으로 출발하였다고는 하나「노동부, 상공부장관퇴진」등 정치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 채 4월30일에서 5월4일까지 진행된 5일간의 전국 총파업 및 가두투쟁에 연인원30여만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참여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조합원 대중의 성숙한 정치의식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며 앞으로의 발전가능성 또한 높이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90년 들어 누적된 모순이 폭발한 물가의 폭등, 주택난의 가중 등 재벌중심의 경제정책이 낳은 민생파탄에 대해 전체 민족민주운동진영과공동 대처함으로써 연대의 폭을 훨씬 넓혔으며, 투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물가의 급격한 상승 등으로 인한 생활상의 위기가 더더욱 격화될 91년에는 민중연대, 노학연대투쟁이 보다 더 활성화될 전망이다.

3. 하반기 투쟁과제와 전망 노태우정권은 지난 10월 소위「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불과 30여가구, 1백여명이 거주하는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는데 칼빈소총으로 무장한 전경 10개 중대가 투입되고, 20여명의 사복 경찰과, 같은 수의 철거깡패들이 동원되는 등 실제 전쟁을 방불케하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이제서야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노동자들을 비롯한 민족민주운동 진영에게 있어 전쟁은 단순히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분단 이후 우리는 오늘날까지 항상 선전포고없는 전쟁을 수행해왔다.

이런 까닭에 전노협은 11월11일「전태일열사 20주기 추모 및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국 노동자대회」를 공권력에 의한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민중대회의 성공을 위하여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회적 투쟁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백번의 투쟁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이를 조합원 대중의 정치적 발전의 계기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90년 하반기 들어 전노협은 조직력 강화에 있어 매우 유리한 조건을 확보해 놓고 있다.

전국 각사에서 대공장 노조들이 속속들이 민주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반기 남은 기간 동안 전노협은 소속노조의 역량 강화에 주력하는 한편 이들과의 공동실천을 강화함으로써, 변함없는 탄압이 예상되는 91년 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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