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조형예술가 김혜경씨와 일본 스콧드 극단간의 표절시비에 적극 대처하기로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이 사건은 김혜경씨가 일본극단 스콧드가 95년 ‘베세토 연극제’에 출품됐던 공연에서쓰인 무대미술 작품이 자신의 89년 작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며 저작권 침해 혐의로 소송을 걸면서 시작됐고 스콧드 극단 측에서도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해 현재 최고재판소에 계류중이다.

이 사건을 보는 많은 사람들은 불타는 애국심에 표절 혐의가 있는 일본극단을 바라보며 화가 치밀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개월간 우리 신문을 장식한 기사들과 함께 이사건을 바라보자. ‘원로교수 표절논란’, ‘식품업계 베끼기 논쟁’, ‘참고서 베낀 시험문제 말썽’, ‘광고계 외국광고 표절 의혹’, ‘인터넷 콘텐츠 표절논란’…. 우리나라 역시 온통 ‘베끼기’로 가득하다.

이는 더 이상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며 구렁이 담 넘듯 슬쩍 지나가는 차원도,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며 포스트모더니즘을 들먹거리는 차원도 아니다.

고대 로마시대 조각들은 훌륭했던 그리스 조각을 베낀 것이 대부분인데 재미있는것은 이 때부터 본격적인 미술 사장과 위작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장의 요구에 따르다 보니 조각을 베끼게 됐다는 건데, 현재 전세계적으로 베끼기가 성행하는 이유도 시장원리에 너무나 충실한 탓이리라. 베끼기를 이렇게 망각하게 만든 또 다른 무기는 윤리 의식의 부재이다.

명망있는 교수들이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98년에는 몇몇 국회의원이 다른 의원이 만든 법안을 그대로 베껴 특별검사법으로 제안했던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이 사회의 정의와 학문의 잣대까지 한낱 막대기로 전락한것은 윤리의식이 땅속에 묻혀버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에 날개를 달아준것은 이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베끼기에 관련된 기사들이 나오면 “저러면 안되지”라며 몇마다씩 떠들다 으례 시간이 지나면 넘어갈 뿐 이를 사회병리 현상으로 문제제기 하는 사람이 없다.

표절과 베끼기를 눈 감아 주고 양심을 잃어버리 사람들의 태도, 이를 일일이 감시하기에는 힘 없는 정부와 우사이 돼버린 시장경쟁력의 합작품 ‘베끼는 사회’이러한 현상은 이제 불치병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 썩어가기 전에 칼날을 세우고 이사회의 대수술을 감행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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