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 한림들의 유유자적한 생화을 그린 ‘한림별곡’에 등장하는 그네를 밀어주는 소년을 타락한 한림들의 성적 노리개 역활을 하던 미소년이라고 해석하는 국문학자들이 있다.

한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중이나 나라가 망하기 전 사회가 어지러울때 관리들의 사생활도 문란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사회가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 있을 때 사회를 이끌어 가는 고위층일수록 주색잡기에 연연하며 특히 성적으로도 그 가치관이 해이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고려 말 한림들의 유령이 떠돌고 있는 듯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사회면 끄트머리는 원조교제 같은 불법적 성행위에 관련된 사건이 차지하며 그 주인공이 사회의 고위층 혹은 식자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난달엔 중견 탤런트가 전화사서함으로 알게된 여중생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적발돼 가십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의 원조교제가 고려말 한림들의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그 다양성에서 확증된다.

최근에도 전라의 여고생이 화상미팅으로 남자손님과 접촉했는가 하면 언니가 친동생을 자기가 아는 점잖은 시사의 상대로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그리고 급기야 지난 15일(화)경기도에서 한 우체국장을 위시한 면 계장, 전직 경관, 모 정당 당원, 용인시 의원까지 5명이 10대 미성년자 세 명과 상습적으로 원조교제를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 개인들을 징계하고 끝낼 만큼 단순한 현상은 아닌 듯 싶다.

유난히 요즘따라 상상을 뛰어넘는 부류의 사람들이 점잖은 체면에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보도들을 보며 우리 사회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성급한 확새 해석일까. 물론 그 전에도 원제교제 단속경관이 원조교제를 했다거나 경찰간부가 윤락가의 포주였다는 황당한 보도들도 있긴 했지만 이렇게 굵직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는 것은 조금 더 당황스럽다.

한 사회에 비교적 큰 책임을 맡고 있는 계층이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은 비단 본인의 변태적 취향만이 문제가 아니다.

음란한 환경으로부터 미성년자들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 스스로가 원조교제를 즐기고 이다는 사실은 더 이상 우리 사회 어디에도 불법적 성행위에 대한 미성년자의 안전지대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문란한 행위를 보도하는 신문기사의 크기도 점점 줄어들어 가고 그에 대한 국민의 따끔한 질책도 무뎌져 가는 사회. 이젠 별로 놀라지도 않을 일인 미성년자 원조교제가 이제 고위 사회에도 버젓이 번져 나가고 있는 현실에 어울리는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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