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이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여론의 눈치에 따라 당명을 바꾸는 경우릴 비롯해 별볼일 없었던 단체가 새 일을 시작할 때 이름부터 바꾸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같은 우리 나라의 ‘이름 바꾸기’역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50년대 미국의 후광을 입고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을 때 쌀나라 미국은 어느새 아름다운 나라 미국으로 바뀌어 버렸다.

17일(일) 이번에는 전투경찰(전경)이 이름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경찰청은 “호전적인 느낌의 전투경찰 대신 ‘시대의 변화’에 맞는 명칭으로 바꿀 때가 됐다”며 경찰청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이름 공모전까지 펼친다고 하는데…. 6·25 당시 빨치산 소탕작전을 위해 조직된 후 69년엔 북한의 남침 대비를 위한 부대로, 70년대 박정희 독재 시대엔 전문적 시위 진압 부대로 50년간 정권의 방패 역할을 추일히 해 온 전투경찰.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에 주목해 보자. 물론 이름을 바꾸는 것까지는 나쁠 게 없다.

자기네가 스스로 이미지를 쇄신하고 싶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문제는 새로운 이름의 화장발, 조명발 속의 본 모습이 어떠한가다.

나름대로 전경이라는 이름은 법 집행과 봉사를 기본 이념으로 한다고 정의내리고 있는 경찰청. 이미 고 노수석 열사 등 수많은 청년들의 목숨을 앗아간 토끼 몰이 진압, 롯데 호텔 집회 당시 여성 노동자 성희롱 등 그간 보인 추태의 가리개 역할을 해 줄 완벽한 이름이 무엇이 될 지 궁금하다.

이제 와 굳이 새 이름을 갖고 싶어 하는 건 시위 현장을 촬영하는 카메라의 사각지대 밖에서 일어나는 폭력 사실들을 일개 국민이 알 길이 없다는 순진한 착각 때문인가. 아니면 그래도 가장 격렬했던 70년대 독재시절 전경들의 행태보단 지금의 진압 방식이 비교적 평화적이고 봉사적이라는 나름의 판단 때문인가. 전투경찰보다 훨씬 평화적인 느낌의 이름을 내걸고 뿌듯해 할 경찰청의 모습은 천 집에 대충 새 페인트칠을 해 놓고 사람들이 새 집으로 봐 주길 바라는 집주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본질까지 완전히 변하지 않는 채 포장용 이름에 가려진 본모습은 들키게 마련이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정보원이라는 점잖은 이름으로 탈바꿈했지만 여전히 불법감청, 알몸수색 등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안기부의 실정이 그 예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우리의 젊은 전경들은 언제나 그래왔듯 곤봉을 휘두르고 때론 방패까지 휘두를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경찰청 나리들은 속으로 생각하겠지. “이름은 평적인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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