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롭고 평화로운 섬, 씨 헤븐. 전 세계인들의 열렬한 관심 속에 한 남자의 24시간이 생중계되고 있다.

날 때부터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살아가던 그는 어느날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조작된 세상을 거부하고 탈주하려 한다.

그러나 태풍을 일으키고 번개를 때리면서 권력자로서의 폭력적 억압을 가하는 연출가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는 카메라, 영화 ‘트루먼쇼’처럼 한 인간의 삶이 미디어 권력을 통해 철저하게 조종되고 통제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도 없을 것이다.

권력은 인간 사회 도처에 늘 있다.

가정에 깊이 박혀있는 가부장적 권력을 비롯해서 늘 다니는 건물, 즐겨보는 영화, 심지어 우리가 늘 먹는 음식에도 권력은 존재한다.

그래서 푸코는“너무도 익명적이고 미시적이어서 그 소개 파악조차 힘든 모든 것들은 권력이 개인이 신체를‘훈육’하는 제도이자 기술이며 규율”이라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일단 권력의 맛을 본 자는 그 맛을 절대로 잊지 못하는 법이다.

엄청난 선거자금을 쏟아 부어서라도 정치권력을 잡아보려는 국회의원 출마자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권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부 로비스트들, 우리 나라를 자신들의 점력지로 알고 있는 주한미군, 그리고 보수언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러한 권력에의 집착을 쉽게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서 권력의 대항 세력에 대해 우리는 일종의 대리만족이나 막연한 동경심마저 품게 되는것 같다.

권력에 대한 은밀한 두려움과 비겁한 순응으로부터 해방된 그들의 용기를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제도권 경찰을 꼬집으며 ‘신한국 건설’로 대변되는 국가권력을 조롱하고 가정내 부권에 도전장을 던지며 부유층을 바보로 만든 블랙코미디‘주유소 습격사건’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무대포’도‘뻬인트’도 아니다.

정신적인 조작이나 설득을 통한‘조종적 권력’으로 인해 자신의 사고와 행동이 지배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다는 인식조차 못하고 살아가는게 보통이다.

권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권력 자신을‘지배와 억압’으로 느끼지 않도록 의식적·무의식적 조작을 통해 받아들이게 하고 순응하게 만든다.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평화로이 살아왔던 트루먼처럼 기득권자의 논리를 대변하는 제도 교육과 선전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왔던 내가 대학에 와서 겪은 혼란은 바로 그러한 권력의 존재를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리라. 작년 4월 서울지하철 파업 현장에서 치솟은 불길을 보면서, 집회 현장에서 학생들이 전경에게 구타당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청량1동 철거민들을 취재갔을 때 비닐 천막에서 그들과 함께 불어터진 라면을 먹으면서, 내가 직접 경험했던 권력은 힘없는 약자들이 생존까지 마음대로 주무르는 힘이었다.

자신의 권력에 조금이라도 위협을 가하는 자들을 감시하고 처벌하고 억압하는 힘이었다.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제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하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많은 윤직원 영감들, 그 속에서 권력은 더욱 커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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