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아버지와 슈퍼에 다녀오다가 옆동에 사시는 김씨 아저씨를 뵙게 됐다.

아저씨는 동네 할아버지들과 경노당에 앉아 장기를 두고 계셨다.

나는 평일인데 출근도 하지 않고 장기를 두고 있는 아저씨가 의아해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아버지의 말씀으로는 얼마전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다고 했다.

아버지와 김씨 아저씨의 대화에서 나는 아저씨가 매일 집안에만 있기가 답답해 경로당에 나왔으며, 일자리를 알아보고는 있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올 해 대학 1학년을 다니는 딸이 다음 학기 휴학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는 아저씨의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럽기만 했다.

열심히 장기판에서 훈수를 두시는 아저씨, 그런 아저씨는 전에 일하던 공장의 마크가 뚜렷이 새겨진 작업점를 걸치고 계셨다.

아저씨를 보며 나는 얼마전 신문의 사회면 귀퉁이를 장식한 한 기사를 떠올렸다.

기사에 따르면 한 노숙자를 죽음에 까지 으르게 한 사건의 시작은 이러하다.

노숙자 한명이 바닥을 뒹구는 신문지 조각(그것은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김대중 대통력을 비방한 내용이었다)을 읽고 이렇게 말했다.

“대통력이 빨갱이니까 나라가 이 모양이지”그러나 듣고 있던 한 노숙자가 그 말에 벌컥 화를 내며 김대중 대통력의 편을 들었다.

김대중이 정치를 잘 해 이 정도라도 회복이 된거라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맞선 주장을 하던 그들은 결국 주먹다짐을 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한명이 죽음에 이른 것이다.

그냥 황당해하면 넘기기엔 찝찝한 기사였다.

도대체 그들이, 당장의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그들이 왜 정치권의 말도 안되는 논리 때문에 목숨을 걸었어야 했던 것인가? 주가가 천 포인트를 오르락 거리고 마치 경제위기는 다 지나간 것 처러 떠드는 언론과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서 나는 문득 분노르 느낀다.

아직도 계속되는 정리해고, 줄어들지 않는 노숙자, 절대 빈곤층이 몇십만명을 넘어선다는 한 시민단체의 통계, 희망에 찬 그들의 주장을 무색케 하기 충분하다.

아직도 복직될 날을 기다리면서 자신을 해고한 회사의 작업복을 걸치는 김씨 아저끼, 굶는 사람이 태반인데도 정쟁만 일삼는 정치인을 편들다 비명에 간 그 노숙자. 일련의 아이러니한 상화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들에게 남아있는 희망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과연 그들은 더이상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제는 실효성 없는 실업대책에 기대할 사람은 없다.

쓸대없는 정쟁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속아줄 국민들도 더이상은 없다.

총선을 앞두고 표밭을 일구기 위해 또다시 민심을 현혹시켜 보려는 정치인들의 행보가 바빠진다.

그러나 이 상태로라면, 더이상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노숙자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건 더이상의 희망을 그들에게 걸지 말라는 것이다.

나에게도 이젠 한표의 투표권이 생긴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은 벌써 한표를 잃어버렸노라고.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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