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나 바보는 볼 수 없는 사기꾼의 옷. 이 옷을 입고 행진하는 벌거숭이 임금님을 보며 사람들은 한결같이 감탄한다.

그러나 멋모르는 한 어린이의 ‘임금님은 벌거숭이잖아’라는 말로 사람들은 거짓은 깨지게 된다.

지난 여름 방학 깜짝세미나 커리를 찾던 중 ‘벌거숭이 임금님’을 읽으며 놀라고 말았다.

자유롭고 기발한 이야기 속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한 한 신하의 거짓이 멋모르는 어린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거짓이 되듯 이 동화는 거짓의 생성과 증폭, 그리고 이것이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이 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담론으로부터 일탈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담담하게 폭로하고 있었다.

임금님은 벌거벗었으나 사람들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있다고 여겨지듯 이 동화속에 드러난 ‘시장의 우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총련 죽이기’로 표현되는 학생운동 탄압. 이현세씨 구속.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검열. 98년 시행될 전자주민카드등 지금 사회의 ‘시장의 우상’은 더욱더 탄탄하게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따. ‘벌거숭이 임금님’이 내게 더이상 동화가 이느듯 난 동화 속 어린이처럼 마냥 철모를 수는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내 눈 앞에 펼쳐진 ‘벌거숭이 임금님’. 임금님은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벌거벗은 상태로 행진하고 있다.

임금님과 신하들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고 그의 왕자가 다시 임금이 될 수 있도록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일탈을 두려워하며 누구 하나 눈에 씌워진 두꺼운 눈꺼풀을 벗기려 하지 않는다.

‘이 눈꺼풀 아래서는 안전하지 않은가’라고 위안하면서 말이다.

진행중인 나의 ‘벌거숭이 임금님’에서 대학생인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혀 길가의 돌을 차며 ‘이씨, 임금님은 벌거숭이란 말이야. 왜 아무도 모르는 거지’라고 중얼거리고만 있진 않은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하는 후배의 조심스러운 고백에 당당할 수 없었던 나.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는 믿음으로 내가 진실이라 여기는 바를 밝혀내도록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행중인 나의 동화속에서 내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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