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을 찡그리는 이갸이는 없습니다…- 주간신문 사람과 XX’ 지난 주 등교하는 길에 라디오에서 어느 신문의 광고 멘트를 들었다.

주된 내용은 날마다 판을 치는 어두운 이야기들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만을 다루는 신문을 만들겠다는것. 하지만 바로 그 날 나는 낯을 찡그릴 수 밖에 없는 사건을 접하고 말았다.

조선대 학생 류재을군의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꼭 이맘때쯤에도 나는 연세대 학생 노수석군의 사망앞에 내내 낯을 찡그린 채 취재를 다니고 있었다.

마감을 앞두고 모여있던 작년 어느 금요일 저녁, 취재를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기자들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통신에 들어갔던 한 동기의 허탈한 한 마디는“사람이 죽었대”. 그리고 당시 정기자였던 그 친구가 부장이 되고 후배가 디시 정기자가 되는 1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다시 그 후배가 반복하고 있는 말을 듣고 있었다.

“사람이 죽었대요” 누군가는 말하기도 한다.

더이상 투쟁가와 울분에 호소하기엔 세상은 이미 너무 달라졌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아직도 과거를 답습하며 감정에 호소하기엔 우리의 이슈는 너무도 많고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어쩌면 그 골치아픈 세상살이 속에서 나에겐 따뜻한 이야기들이, 재미난 이야기들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도 달라진 세상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결국 달라지지 않은 많은 것들을 보아왔다.

변화한 세상의 어두운 그늘에서 아직도 신음을 내뱉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취재를 하며 만난, 아직도 세상 변화의 급류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자식의 장례행렬을 막아서고 나서는 연세대 학생드을 부여잡고 우셨던 노수석군 아버님의 아픔이, 어쩌면 그런 아픔들이 자신의 것이 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셨을지모르는 류재을군 어머님의 망연자실이, 그리고 가려진 수많은 사연들이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현실들을 비껴간다면 그건 썩어가고 있는 부위를 눈에만 보이지 않게 숨기는 것 뿐이 아닐까? 우리를 병들게 하면서도 서로를 소외시키는 거대한 무엇의 힘은 어쩌면 바로 우리들의 이런 모습을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모순을, 상처를 과감히 들춰내고 함께 풀어가자. 그리고 소외받는 이들없이 진정 낯을 찡그리지 않는 이야기들을 우리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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