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씨가 서점에 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월간‘말’지와 사회평론지‘길’을 찾을 수 없다.

이뿐 아니라‘창작과 비평사’,‘나남’,‘한길사’의 책들도 보이질 않는다.

알아보니 그 책들과 ‘좌경출판사’에서 나온 서적들은 ‘합법’인데도 불구하고‘금서’란다.

경찰과 형사들이 싹쓸이해가고, 무턱대고 판매를 금지했다는데… 위 내용은 가상이 아니라 현재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경찰과 형사들이 광주, 울산, 의정부 등 전국의 사회과학서점들에 42종의 ‘판금도서목록’을 들이밀면서 판매중단과 반품을 강요했다.

또한 65개 출판사의 명단과 대표자의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까지 기록돼 있는‘좌경이념서적 발간 출판사 및 대표현황’문서도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른바 문민정부판‘금서목록’이 불온 서적도 아닌 정부로부터 납본필증을 엄연히 받고 공보처에 등록된 합법적인 서적들과 월간지를 금서로 정하는‘초법적인 파워’를 과시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보다 더욱 교묘하게‘문민’이란 이름만 내걸고 자유로운 언론출판을 허용하는 것처럼 수작(?)을 부리다가 이면에서 보다 강도높게 탄압하고 있다.

마음대로‘이 책만 일어라, 저 책은 읽지 마라’식으로 국민들을 휘어잡으려는 것은 마치 말의 두 눈을 가리고 자기가 지시하는 방향만으로 가라고 채찍질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휘둘러지는 채찍질에 우리 언론의 자유고, 사상의 자유고 다 날아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런 행태에 대해 공안당국이 배후에서 통제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속에서 검찰과 경찰관계자들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탄압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행위’라 비난했고 법조계에서도 법원의 판결에 의하지 않고 합법적 출판사의 이적출판사 규정과 함법적인 출판물에 대한 판매중지·반품강요는 명백히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과 영업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지적됐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문민’정부라면서 왜 금서목록을 만들었을가 의문이다.

예전‘금서’가 등장했던 진시황때의 분서갱유나 히틀러의 서적탄압 등 역사적 사실들을 떠올려 보자. 자유로운 지식의 흐름을 막았던 이유는‘정통성 없는 독재’라는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라치면 여지없이‘빨간 딱지’를 붙인다는 발상은 합법이고 헌법이고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식의 군사독재정권에서 답습한 것이다.

이번 소동에서 알 수 있듯이 본질적으로 헌법에서 엄연히 보장하고 있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하고 개개인의 인권보장이 되지 않는 사회라면 다음번에는 또다른 형태로 우리는 괴롭힘을 당할 수 밖에 없다.

‘빨간 딱지’는 책에만 붙여진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법전에만 숨어있는 우리들의 자유를 이제 현실에서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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