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인 홍세화씨는 프랑스사회는‘똘레랑스’가 흐르는 사회라고 말한다.

프랑스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는‘똘레랑스’가 인정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4일(금) 헌법재판소는 공연윤리위원회(공윤)의 영화법 사전심의제도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문은 헌법재판소가 ‘민간기구에 의한 사전심의’라는 문화체육부의 주장을‘국가기관에 의한 사전검열’로 판단함에 따라 내려진 것이다.

공윤위원을 문화체육부장관이 위촉하고, 심의결과를 장관에게 보고해야 하며, 또 공윤이 정부예산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당연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공윤은‘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칠 우려’라는 검열의 명목을 들어 자의적인 판단아래 사회비판의식을 담은 영화를 규제해왔다.

화려한 88올림픽 이면에 가려진 강제철거의 모습을 담은‘상계동 올림픽’을 제작했던‘푸른영상’의 대표 김동원씨가 작년 6월14일 구속된 것이 그 일례인 것. 그러나 이번에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정치적 검열은 종식되고 한국사회에서도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희망이 든다.

하지만 같은 날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또 다른 판결은 이러한 희망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국가보안법(국보법) 7조1항(찬양·고무)과 3항(이적단체구성), 5항(이적표현물 제작배포)에 대한 합헌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결정은 한총련 사태, 무장간첩 남파 사건등으로 등장한 보수회기물결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 결정에 따라 최근 여권에서 강력하게 추진해온 안기부법 개정움직임은 더욱더 활발해 질 것이며 국보법 해석을 달리해 무죄를 선고받았던 하급심 판결들의 앞날은 심한 풍파에 부딪치리라 예상된다.

즉, 헌법재판소의 국보법 7조 합헌판결은 당초 이것이 가지고 있었던 다의적인 용어해석, 광범위한 적용범위 등의 결함을 무시하고 상급법으로서 더 확실하게 정치·사상의 자유를 억압할 기제가 딜 것이다.

결국 공윤의 영화사전심의제 위헌 판결에 따른 정치·사상의 표현의 자유보장이라는 당근 뒤에는 국보법 7조라는 다채찍이 숨겨져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공윤에 의한 영화법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됐다고 쌍수를 들어 환영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국보법이 이제껏 해왔던‘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 아니라 상위법으로서 ‘걸이’라면 무조건 잡아들일 확고한 위치를 점유한 까닭이다.

분단은 한국사회에서는 국가안보를 내세워 자유로운 창작을 지배하려는 권력이 무너지지 않는 한 표현의 자유란 있을 수 없다.

홍세화씨가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에서 가슴깊이 각인됐다는 프랑스의‘똘레랑스’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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