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아버지의 일터에서 오늘도 아버지는 우리가 모두 잠든 새벽녘에 출근을 서두르신다.

혼자하는 아침식사, 그렇게 무거운 어깨를 털며 아버지는 25년간 그런 뒷모습을 보여 오셨다.

내가 최고의 근면한 노동자일거리라며 머쓱해하시던 아버지. 그런 어느날엔가 아버지는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일거리가 없는 한직으로 밀려나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사표를 썼다며 한동안 우울해하셨다.

그리고 아버지 역시 25년간의 노동의 무게를 모두 짊어지신 듯 피곤한 모습으로 「퇴직」의 압박감에 시달리셔야 했다.

그런 모습이 안스러워 나는 온갖 일간지와 잡지기사를 들먹거리며 아버지의 무능이 아님을, 아버지만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해댔다.

「신인사제도를 통한 경영혁신ㅡ능력있는 사람이여, 비상하라. 50대들이여, 네 자신을 알고 알아서 처신하라.」 오! 맙소사. 기업을 위한 혁신이 곧 애국이오, 가치있는 삶임을 떠벌리던 그들,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겠다고 유혹하던 그들. 노사합의를 들먹이며 인간을 팔아대는 PR광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내는 그들 앞에 아버지의 소중한 25년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그저 하루하루의 「노동」만이 탐났을뿐. 그러나 기업편의주의 바람에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아버지에게 여전히 「자신의 회사」는 거역할 수 없는 지주이다.

「그래야 기업이 살아남지」하시면서 노조 사람들을 안스럽게 타이르시고, 임금인상은 물가인상의 주범이라며 반대하시던 아버지. 그리고 어느새 자신을 버린 사회를 망각해가시겠지.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동지」를 소개해드리고 싶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다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 그러나 결코 잊지 않기 위하여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 거리에 텐트를 치고 끊임없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나가려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세상 속으로 도망치지 않은 당신의 모습임을,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태어난 아버지의 형제들임을. 사람은 평생을 일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기쁨의 노동, 내 노동을 확인할 수 있는 노동은 존재하는가? 극소수의 혜택받은 인간을 제외하고는 일을 선택할 권리도, 정당한 댓가를 찾을 주변머리도 없는 대다수의 우리들은 일에 지친 나머지 일밖에서 미친듯이 나의 삶을, 왜곡된 탈출구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기쁘게도 인간에게는 기쁘게 일할 요지부동의 권리가 있고 그러기에 우리는 일 속에서 나의 참모습을 찾아나가야 한다.

내일 아침엔 아버지의 출근길을 배웅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귀에 조심스럽게 속삭일 것이다.

아버지가 기브게 노동할 그 날을 기다린다고. 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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