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를 앞둔 제9대정의숙 총장에게 듣는다

정의숙 총장의 돌연한 사퇴에 즈음하여 우리 신문사 기자 4명은 정총장과의 인터뷰를 기획하고 19일 (목) 오전 9시 30분에 총장실을 방문하였다.

이미 너무 오래 사용한 때문인지 갈색 껍질이 조금 벗겨진 채 더러운 기운 자국도 보이는 커다란 쇼파가 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름을 알수 없는 키작은 화초도 몇화분 수줍게 놓여 있었다.

거기서 만난 정총장의 모습도 그방의 느낌처럼 정갈하고 소박해 보였다.

예기를 나누는 동안 줄곧 특유의 선선하고 시원한 웃음소리를 들려준 정총장은 말을 마치자 마자 다시 바쁜 일과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흡하나마 정총장과의 이 대화를 통해 대학에서의 총장의 위치와 , 학교에 대한 총장의 이해에 대해 독자들이 가늠해볼 기회를 갖게되길 바란다.

<편집자> 이젠 새 사람 들어설때 ▲선생님, 바쁘신 중에 이렇게 귀한 시간 비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만, 역시 이렇듯 갑작스레 사퇴의 뜻을 밝히시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가 가장 궁금하군요. △생각했던 것보다 교내외적으로 애 사퇴발표가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던것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 의사는 한두달사이에 결정된 것이 아니예요.이미 85년 제8대 임기가끝나던 당시부터 전 더이상 이자리를 지킬의사가 별반 없었습니다만, 86년이 100주년 기념의 해인데다 주위분들의 여러 권고가 있었기에 다시 한번 총장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 사이에도 저는 이미 2차례나 재단측에 사퇴의 뜻을 밝히었고 3번째인 이번에야 비로소 재단의 양해를 얻게 되었던 겁니다.

전 이미 11년간이라는 오랜세월을 총장으로 보냈습니다.

그것은 무척 긴 세월이지요. 그 사이 사회는 급변했고 이제 우리도 민주화의 길을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난 내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랜 생각끝에 더 늦기전에 좀더 시대에 맞게, 또 새로운 의욕으로 일할수 있는 사람이 이 중책을 맡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이번 우리학교의 총장선출방식은 선생님의 사퇴선언 만큼 이나 세간의 많은 화제를 모은 것으로 압니다.

어떤 경로로 예전과는 다른 교수직선제 선출방식이 도입되게 되었는지요? △재단의 정관에는 분명히 총장은 재단에서 임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으며 민주화에대한 교수님이나 학생들의 관심도 훨씬 고조되어 있습니다.

민주제에 실현에 있어 선거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지요. 그런 관계로 요즈음은 다른 몇몇 대학에서도 총장을 선거를 통해 뽑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거의 과정속에서 파벌주의, 분열이라는 위험한 요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거야말로 잘 활용할수 있을 때는 매우 좋은것일수 있지요. 이번 선거는 그런 의미에서는 어디에서나 칭찬들을 만한 훌륭하고 치밀한 선겨였다고 자부합니다.

깨끗한 선거를 치루어 낸 교수님들도 모두 새로운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현재의 방법보다 더욱 민주적인 방안이 수립될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재단의 정관을 변경하는데에는 반드시 문겨부의 승인이 있어야만 하는 까닭에 이번에도 현재의 제도하에서 할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으로 재단이나 선생님들꼐 노력을 해주신걸로 압니다.

왜 미혼여성이냐구요? ▲학생들이 평소부터 가지고 있는 궁금증 중에서 왜 우리학교 총장은 반드시 미혼여성인것일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 규칙(?)은 이번에도 맞아 떨어졌는데 그것은 정말 우리 학교가 내세우고 있는 규칙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재단이 사회의 정관에도 그런 규칙은 없지요. 그러나 그것이 지켜지고 있는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까지 남녀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 전국에서 남년공학에 여성총장이 있는 경우는 한군데도 없으며 심지어는 거의 모든 여자대학교에도 남성이 총장직을 맡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볼때 여자대학에서만이라도 여성의 능력과 지위를 인정하여 여성이 총장을 맡는것은 시대적인 필요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앞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구체적 평등이 이루어져있지 않는 한 가정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할애할수밖에 없는 기혼여성은, 그야말로 전력투구를 요구하는 총장직은 아직 무리라고 할수 있겠지요. 그러나 앞으로는 물론 정말 능력있는 기혼여성이 나타나 이런 고정관념을 바꾸어 낼수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선생님께서 취임 당시 하셨던 취임사에는 크게 2가지의 교육적인 포부가 들어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하나는 연구·공부하는 대학의 모습을 갖추라는 것이었고, 하나는 여성지도자의 양성이었지요. 이러한 면들을 이제는 어느정도 이뤄놓았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총장이 된 이후 지금까지는 그러한 목표들을 구체화시켜나가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힘을 가장 많이 투입하게 된 것이 바로 100주년 기념관, 즉 도서관의 마련과 교수확충의 문제였습니다.

다행이도 이제 우리의 도서관은 전국 어느 대학보다 뛰어난 시설과 장서 소장을 자랑하게 됐지요. 특히 10년후를 내다보고 도입한 전산처리 시스템은 타교로부터 매우 훌륭한 모범이라는 극찬을 듣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국제정보시스템에 가입하여 세계 각 대학에 있는 정보를 교수실마다에 설치된 컴퓨터에서 직접 받아볼수 있게 하는 장치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도 그간 많이 충원되어 현재 계시는 분들의 3뷴의 1은 모두 80년 이후 모시게 된 분들입니다.

물론 아직 도 많은 시설과 사람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것이라 봅니다.

북한은 적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고향은 압록강근처 신의주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통일이라는 부분에 관해서도 남다른 관심이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의 통일에 대해 평소 어떤 생각을 지니고 계신지요? △사실 이념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분리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한 민족을 어떻게 갈라놓을수가 있겠습니까? 실제로 일제시대때 우리가 일본인들에 대해 가졌던 감정과 지금 분단조국에서 남한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은 전혀 틀리다고 생각되요. 나도 6.25당시 생사를 넘는 경험을 너무나 생생하게 겪으며 이루 말할수 없는 고통을 당했었지만 같은 민족이기에 아무래도 적이라는 개념을 가질수는 없는 겁니다.

그렇기에 통일에 대한 염원은 그 누구에게나 진정으로 절실한 것이지요. 다만 어떤 방법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하나가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이제 독일이 저렇게 통일을 향해 한발 두발 다가서고 있는것에서도 알수 있듯 세계는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통일도 비록 수많은 장애가 있겠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또 서로가 떳떳하게 마주할 수 있는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하나가 돼야 합니다.

거기에는 서로에 대한 지극한 이해와 양보가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하겠지요. ▲학생들의 사회참여에 대해서 요즈음 많은 의견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어느쪽이든 독선적이고 편견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개방적·합리적인 것이 수선되어야지요. 21세기를 향해 함께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도 그것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사회 정의의 실현은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자기 희생적인 사랑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학교는 사랑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학사회의 가장 빼어난 특징인 합리주의가 적절히 배합될때 우리 학생들의 활동은 좀더 정당성을 얻고 또 효과도 거둘수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현재의 학생들이 지닌 순수한 의도와 현재 우리 정치상황의 옳지 못한 점에대해서는 어느정도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학생도 결코 미워보일수 없지요. 도리어 그런 고생이 안스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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