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내려 들어선 교문, 그리고 이화교. 따사로운 5월의 햇살에 눈이 부신 하루다.

그런데 나의 눈길을 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햇볕이 정면으로 비치는 박물관 앞 한켠에 이화인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벌써 여름의 더위를 느끼는 것일까? 썬글라스까지 끼고 봄햇살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그중 두 사람은 소매없는 옷(흔히 나시라고들 하지만)을 입고 팔을 벌린채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풍기는 뭔가 이상야릇한 냄새가 그 앞을 지나는 나를 더욱 잡아끌었다.

그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적당하게 피부를 그을리기 위해서 선탠로션을 바르고 피부를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별생각없이 대강당을 오르면서 문득 다가올 「여름」이화교정의 풍경이 연상되는 듯 해 씁씁한 느낌을 감추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남에게 피해 안주고 하고 싶은대로 살면 되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힘주어 반박할 말이 내겐 없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학점과 취업준비가 대학생활의 전부인 양 분주한 학생들, 개인화되고 탈정치화된 사람들의 모습이 긍정적인 삶의 태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쌀시장 개방이 되면 우리 농촌은 어떻게 될지」「과연 이화교는 존재가능한지」「럭키프라자는 어떤 건물인지」보다 최진실이 선전한다는 「씨」의 옷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대자보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는 이화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런지. 「사망신고를 아빠 나이 90세 되거든 하여라. 그래야 휴업급료를 탈 수 있다.

그때까지 타면 많이 탈꺼다.

아빠가 병에 몇년 시달리다 병때문에 죽기 때문에 떳떳하다.

한달에 27만원씩 나온다.

운천이 14만원, 운정이 5만원, 운태 8만원씩 나누어 갖도록 하여라… 그리고 아빠는 화장터에…」 원진레이온에서 8년간 근무하다 강제 퇴직후 88년 10급 장애등급 판정을 받고 직업병으로 인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권경용씨의 유서중에 한 부분이다.

우리사회 현실엔 아직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교문을 들어서며 따사롭다 못해 눈이 부시던 그 5월의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는 건 왜 일까?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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