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둔한 짐승은 쫓기다 쫓기다 막바지에 이르면 얼굴만을 숨기채 자신이 적으로부터 「완전히」숨었다고 생각하고 마는 웃지 못할 어리석음을 본능으로 지닌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이 시대의 어느 권력집단에 의해서도 일어나고 있으니 더욱 웃지못할 일이다.

강경대열사 타살사건 이래 10여명의 청년이 제몸에 불을 당겨가면서 이 땅의 「민주화」를 외쳤고, 연일 잇따랐던 거리시위에서는 수십만의 국민들이 「노정권 퇴진」을 요구해 왔다.

이 마당에 현정권이 저지르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그들이야말로 이 우화속의 짐승만도 못한 저능집단임에 우리는 망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5.9 투쟁의 열기로 전국이 달아 오르던 그 즈음 우리는 「보안법·경찰법 날치기 통과」라는 기사를 접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역시 대문짝만한 글씨로 「국보법 개정으로 임수경·문규현신부 석방검토 중」이라는 기사가 함께 나란히 실려 있음도 보았다.

「35초 날치기 통과」라는 신기록을 수립하는 그들 앞에서 우리는 두 통일인사 석방여부 거론이 민심수습용에다, 제 죄에 제발저린 선수책일뿐임을 훤히 알면서도 「혹시나」했었다.

그러나「혹시나」는 확실히 「역시나」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선수책으로 먼저 들먹였던 임수경·문규현신부 석방문제는 빵빵했던 선전만큼이나 허무하게도 「남북관계긴장우려」라는 말도 안 되는 명목으로 사그러들고 만 것이다.

그런가하면 몇년 전 「이 땅에는 양심수가 한명도 없다」고 장담을 해대던 그들이 이번에는 시국사범들을 석방하겠노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한달 전에 집계해 밝힌 시국관련 사범수 1천여명의 석방문제는 거론도 되지 못한채 「최대한의 관용조처」로 석방된 양심수는 74명에 불과하다.

더욱히 석방자의 상당수가 2년미만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형기의 3분의 2를 복역한 경우, 대부분이 만기출소를 한 두달 남겨두고 있었고 심지어 2~3일 후에 출소할 사람까지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 일 역시 큰 제목으로 생색내기에만 급급한 정권의 모습임을 우리는 환히 알만하다.

정권은 이제 커다란 지신의 죄앞에서 뒤꽁무니만 내놓고 고개 쳐박는 짓은 그만 두어야 한다.

그들에게 이제 길은 하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죄악, 탐욕, 눈가림으로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그 몸을 이끌고 영원히 역사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바로 그길!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