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여행하는 방문객들에게 요즘 안내인들은 곧잘 이런 말을 전한다고 한다.

『통일독일이란 내조국은 새로이 만들어진게 아니라 동독하나가 아예 사라진것을 의미한다』고. 통독은 생성의 의미가 아니라 소멸의 의미가 더욱 강하다는 말일까. 90년 10월 3일 독일통일이 이루어진지 약 반년이 지난 지금에도 부란덴부르크의 벽을 깨던 청년의 모습과 맥주를 양손에 들고「권주가」를 부르던 그들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는데 새삼 통일 이후의 실업문제 등의 경제상황과 동·서독인 사이의 자격지심등으로 얼룩져 혼란을 겪는 저쪽나라가 왠지 낯설지 않다.

마땅히 몇십년을 갈라져 살아온 두나라가 하나가 된다면 새로운 다른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 할텐데 독일은 화폐도 국기도 국회의사당도 모두 서독의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통일에 대한 불만은 양측 모두에게 존재하는 듯하다.

세금이 늘어날 것을 두려워하는 구 서독인들과 사회주의권에서는 제일 잘산다고 자부하던 독일인들이 통일후 이등국민으로 평가되고 있어 사실상 벽을 다시 쌓아야 한다는 아우성은 동·서독인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불평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남북한사이에 진정한 의미의 직교역이 가능하다는 보도하나로 남한의 쌀과 북의 무연탄이 휴전선을 뚫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마저 들린다.

더구나 남북양측이 구상무역대신 물물교역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합의한 것을 내국간거래의 의미를 북한이 동의했다고 내심 흡족해 하기도 한다.

물론 쌀을, 무연탄을 거래하는 수준에서 벌써 한반도 통일을 논한다면 막말로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일테고 통일후 한반도에서 생길 제 2의 통일독일 문제를 지금 가늠해보는 일도 아직은 이른듯 하다.

그러나 단언하건데「또하나의 조국」이라는 북한을 이적으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이 활개를 치고있고 1년에 4백여명이 이법과 관련해 구속당하는 모습을 상기한다면 그 혼란은 더욱 클 것이 자명하다.

얼마전 검찰이 조정래씨의 장편소설「태백산맥」을 대학가에서 의식화학습교재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이적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만 보더라도 그렇다.

완간한지 2년이 지난「소설」이고 2백만부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까지 내용상의 이유로 - 주인공이 자본주의에 실망, 공산주의를 선택한 대목 하나로 - 적을 이롭게한 죄목을 씌우는 지금의 작태는 가히 통일후의 문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 과정이 심히 걱정될 정도다.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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