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증후군 사르트르는 그의 작품 「파리떼(Les Mouches)」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스 지배에 침묵하고 오히려 독일 지배권력과 영합하고 있는 지식인등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지식인은 결국 그 사회가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다.

세계의 갈등이 자신의 내부 속에 내재화되어 있으므로 지식인은 세계의 모순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 그는 일생동안 인간의 가치를 말살하는 모든 억압에 반발하고 거부하면서, 지식인이 얼마나 끊임없는 투쟁을 계속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제2차대전당시 독일점령에 대항해 레지스탕스운동을 했고, 알제리 전쟁때 잔혹한 식민지정책을 자행하는 조국 프랑스에 대항해서 싸웠고, 냉전체제속에 미·소 양대진영의 식민정책을 비판했던 그의 전생애가 그것을 압축해준다.

1990년대 한반도 진보적 지식인들은 열병을 앓고 있다.

혹자는 페레스트로이카증후군이라고 하고 혹자는 포스트 모더니즘 증후군이란 표현을 붙이기도 한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나 중국의 천안문 사태, 루마니아의 민중봉기,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의 통일, 알바니아의 자유총선 등 전세계적 규모의 반혁명(?)은 ㅡ현상적으로ㅡ자본주의 위기론 대신 사회주의 위기의 테제를 채택하게 할 판국이다.

한편 국내상황은 어떠한가. 민자당내 차기대권을 향한 3계파간의 암투 및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하는 YSㅡDJ구도, 30년만에 부활됐다는 지방자치제, 물가폭등 등 민생고속에 연이은 민주인사 구속. 온통 정국이 「폭발탄」의 연속이다.

이와 같은 「지적 공황시대」에 진보적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태도역시 여러가지이다.

대중운동의 진로를 제대로 잡아주기는 커녕 방향감각조차 헤매고 있다.

최근 몇년동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우려할 만한 현상중의 하나는 전망과 대안에 관련된 영역의 「운동권의 분열상」과 정치적 냉소주의·허무주의가 아닐까 싶다.

아무도 시대의 여러 증후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 사회와 한 시대는 언제나 자기 나름의 문제와 고민을 걸머지고 싸웠다.

역사의 필연성이라 일컫는 과정에서「진보의 댓가」를 치루는 가운데 역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장식해 왔다.

이 역사의 책장 속에 우리는 과연 어느 자리에 서있는가. 얼룩진 오늘의 한국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참여할 것인가. 이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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