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화국 들어 다소 우호적으로 보이던 사회과학도서 해금기류가 이제 그 본색을 드러내나 보다.

3월 한달동안만해도 힘·노동문학사·녹두등의 출판사 발행인과 직원들이 잇따라 구속되었고, 열사람·함성등의 출판사가 이적표현물 제작혐의로 조사대상에 오른 것이다.

「새벽」의 발행인 김명국씨, 제 3세계 민중문제 전문기고가 김명식씨, 이진경씨 구속등 90년 한해동안의 문인·언론인의 구속자 수는 5공 7년동안의 숫자를 간단히 넘겨 버리고 만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있다.

뿐만아니다.

지난 12일 노동자의 생활과 정서를 시로써 탁월히 형상화 해내었던 얼굴없는 노동자시인 박노해씨가 대로선상에서 구속되어 더이상 얼굴없는 시인이라는 명칭은 붙일 수 없게 되었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그는 6명의 안기부원에 의해 머리를 점퍼에 뒤집어 씌워진채 구타를 당하며 끌려갔다.

그의 저항이 없었던들 그는 쥐도 새도 모르게 「붉은방」으로 끌려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내 전선에 서다」의 저자인 김미영씨도 박노해씨가 구속된 다음날 연이어 연행구속되었다.

그리고 서민미련의장 구속등 잇따른 탄압사태는 열거하기 조차 힘이든다.

또한 압수대상이 된 책들을 살펴보면 일제하 무장독립운동에서 최근의 국내 반미자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를 다룬 근·현대 서사시집 「쑥대 설렁이는 해방산 저 기슭」등 소위 해적판이라 일컬어지던 북한 서적들이다.

그러니까 이런 출판탄압의 명목상 명분은 대부분 북한 서적 복제본들 등의 이적표현물 제작·배포혐의라는 것이다.

통일원이 앞장서서 북한서적 「리조실록」등을 수입·배포하고 의학·과학분야의 북한서적이 버젓이 읽혀지고 있는 이 마당에 북한원전이라하여 출판사들을 들쑤시는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정부가 촉각을 세우는 책들이라는 것이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말이다.

이적 표현물이니 누가 「적」이라는 것인지... 그야말로 평소 눈에 거슬리던터에 이때구나 하고 출판사고 저자고 한꺼번에 묶어버리자 하는 술책이다.

「국민은 학문·사상·출판의 자유를 지닌다」는 헌법조항은 새삼 들출 필요는 없다.

매스컴과 언론장악에 이어 문화·예술계까지 손안에 넣겠다는 것임을 바보가 아니고서야 돼 모르겠는가. 가장 광범하게 생활속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설과 문학작품들의 출판통로부터 봉쇄하겠다는 심산이고, 독자들을 사전 저지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과 이별타령의 무비판적인 문학작품만을 대하고 무정부적이고 몰역사적인 수필이니 처세술 같은 허위적인 글들만 접해야된다는 결론이다.

또한 역사·경제·철학에 대해서는 가진자들의 이론을 내세운 브르조아역사·경제·철학만을 배워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른말과 바른소리, 바른 글을 듣고 보고 말할 권리가 있다고들 하는데 현재가 그러하냐고 묻는다면, 자조의 웃음만 흘러나온다.

이젠 「이적표현물제작·배포」혐의의 대상은 얌전히(?)책일고있는 우리에게 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하철에서 가만히 책을 읽고 있다가도 가슴 섬뜩해지는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하는지. 양어깨죽지를 틀어잡는 알지못할 이들의 동행요청을 뿌리처야할 지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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