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스트로이카가 제기했던 이론적인 문제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1)「현존」사회주의의 질적 쇄신의 문제(사회주의 정치, 경제, 문화 행태의 재구성) (2) 제국주의 이론의 재구성 즉 현대자본주의에 대한 재평가 (3) 개발도상국에서의 급격한 탈자본화, 변혁노선에 대한 재평가. (1)의 경우 사회주의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문제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실현의 문제, 관료주의 극복과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확립의 문제해결을 구체적으로 제기했다.

(2)의 경우는 현대국가독점자본주의 생명력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사회주의권의 이것과의 유기적 연관관계의 부분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3)의 경우는 사실상 페레스트로이카의 제3세계 정책의 주요한 내용을 이루는 바 그 기조는 제 3세계변혁노선에 대한 일정한 반성을 제기하면서 완만하고 점진적인 변혁의 길을 기존보다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다.

페레스트로이카 출범의 직접적 배경이라고 한다면 70년대 중반부터 지속되어온 소련내 경제침체, 관료주의의 심화, 노동생산성의 감퇴 등으로 야기된 총체적 위기에 대한 해결 모색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의 낙관적인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 전략은 89년에 들어서면서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소련경제 자체가 페레스트로이카의 경제정책인 시장경제의 확대 도입에도 불구하고 침체의 늪으로 더욱더 빠져들고 있으며 급진 개혁파와 보수파 양측의 계속되는 공방으로 야기되는 정치적 혼란의 문제, 여기에 민족문제와 노동자 파업까지 겹쳐 소련 사회주의는 스스로를 방어해 나갈 수 있는 역량조차 의심받을 만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소련 사회주의의 현실은 제 3세계 사회주의권에 대한 기존 수준의 지원을 대폭 감축내지는 중단하기 시작함으로써 이 지역에서의 페레스트로이카를 간접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페레스트로이카의 대 제 3세계 정책은 인도공산당을 비롯하여 일부 제 3세계 좌파진영으로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치기 시작했고 북한, 쿠바 등 정통 사회주의 노선을 고집하는 제 3세계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소련은 이미 사회주의 인터내쇼날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출범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 3세계에 있어서는 이행의 물질적 전제와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기초가 없어도 사회주의권의 원조에 의해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비자본주의적 발전론(이하 비자발론)」을 그 이론적 틀로 하였다.

민주집중제 실패 및 최빈극화 그러나 아프리카에서의 비자발론은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가나, 기니, 말리 등 대표적인 사회주의국가들이 계속되는 경제적 침체와 인종적·종교적갈등, 일당독재에 따른 관료주의의 횡포 등으로 전반적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었던 알제리 역시 대중들의 격렬한 반발로 집권당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이 일당독재를 폐기하고 다당제를 수용하면서 시장경제의 확대도입 역시 약속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지난6월12일 실시된 지역자치선거에서 이슬람구국전선(FIS)에 패배하고 말았다.

또한 캄푸치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사회주의 건설 역시 페레스트로이카 추진론자들에게는 비관적으로 비추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페레스트로이카 추진론자들은 제 3세계 사회주의에서의 고질병을「민주적 중앙집중제의 실패」와「최빈극화」로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추진론자들의 제 3세계 혁명대안 비자본주의의 길을 추구함으로써 경제적 후진성을 신속히 극복하고자 했던 소련의 희망은 이미 좌절되었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국가들이 참여함으로써 세계사회주의가 강화될 것이라는 희망 또한 좌절되었다고 보고있는 페레스트로이카 추진론자들은 제 3세계 혁명의 대안으로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로 이들은 제 3세계 사회주의의 부정적 현실의 근본적인 원인으로서 스탈린식의 행정명령형, 관료적 사회주의가 올바른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왜곡하고 생산력의 발양을 억제했다는 논리를 들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현재의 암울한 제 3세계 사회주의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련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 자본주의시장과의 유기적 연관관계를 실현하고 정치적 측면으로서는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폐기한 가운데에서 다당제의 도입을 의미한다.

두번째로 이른바 제 3세계 사회주의의 관료적 사회주의체제는 저발전 사회와 미성숙한 사회주의의 산물로서 이 체제가 사회주의 건설을 시작한 사회의 낮은 발전 수준 - 자본주의의 미성숙과 프롤레타리아트 생성의 미흡 - 에 의해 필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충분한 자본주의의 발전과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이 제 3세계에의 사회주의 건설로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주요한 조건이라는 논리이다.

사실상 이와같은 논리로 볼 때 페레스트로이카 추진론자내에서는 제 3세계에서의 사회주의 수립 자체에 대해 이미 부정적 견해가 지배적임을 감지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제 3세계 사회주의가 스탈린주의 모델을 이념형으로 하였다고 보기에 현재 소련의 위기적 상황과 제 3세계 사회주의 위기적 상황은 인과관계에 있다는 인식이다.

지금까지 페레스트로이카의 내용을 살펴본 바로서는 페레스트로이카 추진론자들 내에서의 이념형적인 개혁모델은「사회민주주의」로 자리잡아 가고 있음이 여실히 나타난다.

사실상 페레스트로이카의 여파 속에서 동구사회주의권은「사회민주주의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동독 사회주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서독에 흡수되어 버렸다.

) 표류하는 제 3세계 사회주의 그렇다면 과연 제 3세계에서 유럽식의 사회민주주의 건설이 가능한가. 몽고와 알제리는 그 실험적 모델이 될 것이다.

이러한 페레스트로이카의 세계인식과 제 3세계 사회주의를 포함한「현존」사회주의의 위기에 대해 사미르 아민(Samir Amin)은 현실이 사회주의 미래의 새로운 대안을 요구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시장경제의 불합리성, 자본주의의 민주주의 속에 숨겨져 있는 억압과 소외의 측면, 세계체제로의개방이 갖는 수탈의 역사와 그 가능성 등을 확인하고 있다.

북한, 쿠바 등이 바로 사미르 아민이 지적한 자본주의 측면에 보다 충실한 사회주의 국가유형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들이 언제까지 현존 사회주의 개혁의 대세로부터 계속적으로 버텨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사회주의 일반이 그러하듯이 제 3세계 사회주의는 미래의 대안에 대한 고민에 부딪쳐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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