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곳곳에 낙엽이 떨어져 스산한 기운마저 감도는 요즘, 이 계절을 느낄 새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포스터를 보고 찾아간 곳이 학관 414호. 마침 마지막 공연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 틈에서 대본을 열심히 읽고 있는 한 연기자를 만나본다.

『저희 독문과에서는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 마음을 터놓고 하나가 되기 위해 「90독문학제」를 하고 있어요』라고 말문을 여는 사람은 원어연극 「보이체크」의 주인공 보이체크역을 맡아 열연한 박연주양(독문·2)이다.

이 독문학제는 연극제를 비롯해 시화전, 영화제, 독문인의 밤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로 펼쳐지며 학회가 중심이 되어 지금까지 「갈고 닦은」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자리이다.

『평소에 연극을 좋아해 학회의 희곡부에 들었다가 이 역을 맡게 되었어요. 처음하는 연극인데 더구나 독어로 하게되어 힘들었지만 교수님들과 과친구들이 도와주어 잘 할 수 있었어요』라며 교수님들이 독어발음은 물론 연기하는 동작까지 일일이 신경써 주었다고 자랑. 박양은 2개월 동안이나 연극에 몰두하다 보니 문득문득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 정도라고 한다.

더구나 남자의 쉰 목소리역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감기에 걸린 목을 낫지 않게 하려고 밤에도 춥게 잤다며 웃는 야무진 모습이다.

『이 극은 물질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인 사회로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수탈당하고 자아를 상실하게된 주인공이 살인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에요』라고 극을 소개하면서 과연 그 책임이 당사자에게만 있겠는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자칫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기 쉬운 현재 대학의 풍토를 조심스레 꼬집는다.

연습을 끝내고 친구들과 대강당 위에 비친 달을 보며 집에 돌아올 때 새삼 학교와 과에 대한 푸근한 애정을 느꼈다는 박양은 분장 때문에 얼굴이 따가와 연기하기 힘들다고 은근히 고충을 하소연 하기도 한다.

『선거로 바쁜 요즘, 공약에서 나타나는 학생회 강화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조그만 문화·학술공간을 통해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라며 학생회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한 보이체크가 살인을 하는 끝장면의 막을 뒤로 하며 문득 모든 사람이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산다면 이 시대의 보이체크는 사라질 것이라는 박양의 말이 생각난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