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빠라기. 「하늘을 찢고 나온 자」라는 속뜻으로 남태평양 어느 추장의 이름이다.

시내 대형서점의 「금주 베스트셀러」에서 단연 1위를 지키고 있는 터라 리듬을 탄 미묘한 어감의 제목과 함께 추장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한 우스꽝스런 겉표지는 독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성자가 된 청소부」나 「꼬마성자」등 『삶의 본질을 통찰하고 인간의 숙명과 깨달음을 찾고자』하는, 어찌보면 따분한 공자님 말씀의 되풀이거나 신비하지만 애매한 단어들의 나열로 지루하기 그지없을 이런 부류의 책들이 출간될 때마다 매번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부패한 정치세태, 물질만능, 퇴폐향락주의를 타고 숨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사에 지쳐 어지간히도 「사랑과 영혼의 소리」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정신없고 분주하기만 한 세상이다.

추장 빠빠라기가 한번쯤 서울을 방문한다면 「범죄에 대한 전쟁선포」 이후의 급변(?)하는 거리 곳곳의 풍경에 어리둥절하리라. 「범죄·무질서 몰아내자, 새세상 건설합시다」라는 플래카드의 홍수, 일제시대의 섬짓한 순사를 연상케 하는 헌병대들의 신출귀몰, 머리께에 「교통질서 회복하자」는 현수막을 나부끼는 버스들의 과속질주, 「학교주변 음란퇴폐문화 추방하자」는 피켓을 손수 든 교장선생님의 머쓱한 표정…. 바깥이 온통 떠들썩한데 집안이라고 조용할 리 없을게다.

「민자」집안에서 서로 내가 기강을 잡겠노라고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다.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기 위해 구국의 결단」을 내리던 그들은 「노」를 중심을로 한사람은 두손을 모으고 또 한사람은 뒷짐을 진 채 좌청룡 우백호쯤으로 서 있었다.

오늘의 「공멸」위기를 전혀 예감할 수 없었다는 듯 익살스런 표정으로. 과연 좌청룡이 돌아선 것이다.

모일간지에 나붙은 「등돌린 김대표」의 얼굴은 침울하다 못해 흙빛이었다.

당권을 겨냥하긴 했지만 어쩌면 권력의 무상함·패배감까지도 맛보았을지 모를 「우울한 김영삼씨」에게 빠빠라기는 말한다.

『카멜레온의 변신을 간직한 자네의 철학은 총천연색을 가랑하는구만』 그러나 저들의 권력 다툼에 놀아나 「범죄전쟁」이다, 「정화사업」이다에 목줄을 생짜로 뽑힐 지경에 있는 이 땅 민중들의 외침은 빠빠라기처럼 담담할 수만은 없다.

『먼지처럼 벌레처럼 이름없이 살아가지만 적당한 햇빛만 주어지면 함성처럼 솟아나와 당신들을 응징하고야 말겠다.

』권력에는 반드시 황혼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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