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4일부터 나흘간 서울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은 분단 45년사에 처음으로 공개적 논의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적인 자리였다.

이번 회담에서도 역시 우리는 정치·군사문제를 강조하는 북측과 교류·협력 등을 강조하는 남측의 입장차이를 되풀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북한 당국자 사이에 남북관계 전반에 대해 양쪽 당국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논의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 회담에서 우리는 남북한 교류 협력 실시,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 남북간 군비감축 추진방향을 현안으로 내놓았고, 북측은 정치·군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선결과제로 유엔가입문제, 팀스피리트 중지, 방북인사의 석방문제를 회담에서 추구할 논제로 들었다.

이런 상이한 접근방법에도 불구하고 민족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대명제에 공감하고, 상호비방중지나 자유왕래실편, 군비감축, 고위군사당국자간의 직통전화가설 등 여러 부문에서 합의점을 이끌어내었던 것은 뜻깊은 일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던 종전의 입장을 남북의 군축과 연계해 단계적으로 철수하도록 하자는 등 그간의 자세를 탄력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철수와 핵무기 철거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남북은 10월중에 평양에서 제2차 회담을 열기로 하고 회담을 마쳤으며, 정부는 지난 8·15때 성사되지 못했던 민족대교류를 추석기간에 추진하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여기서 우리는 내용없는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의지에 의혹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끊어진 조국의 허리를 하나로 이으려는 온 국민의 열망에 밀려 민족대교류를 제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렇다 치고, 7·20 선언과 같은 기만적인 태도와 범민족대회의 무산을 통해 정부측이 보여준 것은 무엇이었던가. 통일을 열망하는 민주세력들이 어두운 감옥에 묶여있고, 통일을 가로막는 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한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표명은 기만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대교류제의로 정치·사회·노동문제 등의 현안이 정책논의에서 쑥 들어간 사실도 이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

남쪽정부가 회담을 성사시키고, 통일을 하루 빨리 앞당기려는 의지가 있다면 비현실적인 민족대교류를 제의하기에 앞서 국보법을 하루 빨리 철폐하고, 방북인사를 석방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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