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충남이야. 공채로 이 지하철공사에 입사했지. 83년, 내가 26살 때였으니까… 그래 벌써 8년이 다 채워져가고 있군. 처음 입사했을 때 우리 가족들은 무척이나 기뻐했었어. 솔직히 말해 고등학교밖에 못 나온 변변치 못한 놈이 할 수 있는 일 치곤 그래도 점잖고 깨끗해 뵈잖아. 처음 2, 3년간의 고생은 어휴, 말도 못해. 24시간 막교대로 매일 코피만 쏟으며 살았어. 월급은 또 어떻구? 한달 꼬박 휴일도 없이 일해봐야 이것 저것 위험수당까지 합쳐서 겨우 17,8만원이었어. 하지만 85년쯤 되니 월급도 좀 오르고 그동안 흘린 내 피땀이 아까워 이 직장에 아주 내 뼈를 묻을 결심으로 더욱 성실하게 생활을 하게 됐지.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지.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입사 동기들이 전부 몸들이 이상해진거야. 잠자는 12시간 빼놓고 1년 365일을 지하에서 보내니 나쁜 공기 때문에 기관지는 다 헐지, 만성두통에, 형광등 불빛에 눈은 따갑구 쓰리구…. 게다가 나같은 역무원은 하루에도 7만명 가까운 시민들을 상대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엄청났지. 하지만 이것도 기관사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그 사람들은 거의 일정하게 자는 시간이 없어. 기차시간 맞춰 1시간 자고 1시간 일하고 그런 식이니까. 또 수천명의 목숨이 자기 손에 달렸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도 얼마나 극심하겠더. 이거 할말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지하철 공사라는 데가 우리 직원들한테야 말로 「지옥철공사」라니까. 그래도 87년도에 노조가 생기고 한 2년 피터지게 싸우니 4조 2교대도 4조 3교대로 바뀌고, 맺히고 맺혀 멍든 속도 조금은 풀렸어. 근데 우리 노조원들은 해고에 이제는 구속까지 돼버렸으니. 내 나이 서른이야. 남 같으면 그 뭐 인생의 야망이냐 뭐냐하면서 떠들 때잖아. 지금도 가슴에 「해방역에 닿을 때까지」라는 글자를 박고 이러고 있는 내가 어떨땐 참 초라해뵈기도 해. 하지만, 하지만 말야. 우리 6천 노조원들이 전부다 힘을 합쳐 나간다면 우리도 이젠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걸 난 믿지. 암, 믿구말구. 이제 파업찬반투표가 있을텐데 그래서 만약 파업을 하게되면 시민들이 너무 고생이 많게 되겠지. 솔직히 우리가 서민생활 가장 잘 아는데 그 어려운거 왜 모르겠어. 하지만 좀 도와주시면…이건 너무 힘든 부탁일까? 그럴까 응, 학생? × × × 위의 글은 어제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눴던 한 역무원 아저씨의 말씀을 그대로 정리하여 옮겨 실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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