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철아, 먼저 가거래이. 아버지는 할 말이 없데이.』 싸늘한 재로 남은 아들에 대한 그 아버지의 피묻은 절규가 아직도 생생하게 아픔으로 전해온다.

지난 87년 박종철군을 고문치사케한 범인을 숨겨주고, 고문사건을 조작함 혐의로 구속되었던 4명의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재판부가 강민창(전 치안본부장) 피고인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에 대해 무죄로 판결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박씨 사망 직후 박씨가 가혹행위로 숨진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부검의사의 소견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발표로 인한 사회혼란의 방지를 위한 것이므로 죄목에 해당하지 않는다.

』 결국 한 젊은이를 고문으로 죽여놓고 그것에 대한 여론이 두려워 그 사인을 바꾼 것이 「사회혼란 방지」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 된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박처원(전 치안본부 5차장) 피고인 등 3명의 범인 도피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해 우리를 의아케 하고 있다.

박씨의 경우 지난 87년 구속된 조경환씨 등 2명의 고문경관을 교도소로 면회를 가 각각 1억원이 든 통장으로 회유한 사실은 이미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대해 검찰은 통장을 증거로 제시조차 하지 않았고, 재판부는 이 사실을 간과한 채 박씨에게 무죄선고를 내린 것이다.

이것은 검찰의 고의적인 「직무유기」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우리는 지난 87년 6월을 기억하고 있다.

박종철열사의 죽음에 온 국민이 분노하여 5공의 기반을 뒤흔들어 놓았던 6월항쟁. 그런데 이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정부의 비호 아래, 사법부의 독단에 의해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선고된 채 무마되고 있는 것이다.

무죄선고가 내려지던 날, 방청을 온 대공분과 동료들이 무죄판결에 환호성을 울렸다 한다.

이제 그들은 법원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고문을 계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쁜 것인가? 또한 이번 판결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5공 비리에 대해서도 무죄선고를 하겠다는 재판부의 암시적인 선전포고로 보여진다.

또다시 법원은 5공으로 회귀해 「정의 아래서 심판하여 처벌한다」는 기본적 개념마저 바꾸려 하고 있다.

고문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위해 이 사건은 처음부터 재수사되어 철저한 진상규명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사법부는 다시 한번 민중의 뜻에 따른 재판을 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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